5일 오전 만난 붉은 악마의 신인철 회장(34)의 얼굴은 초췌해 보였다. 전날 부산에서 한국 폴란드의 격전을 치른 뒤 버스를 타고 새벽에 서울에 닿은 탓이었다. 그러나 붉은 악마의 앞길에 대한 질문을 던지자 거침없이 말을 이어갔다.
“폴란드전 때 붉은 악마를 통해 티켓을 받은 응원단은 2300여명뿐이었어요. 그런데 경기장에 가 보니 한국 관객 5만명이 전부 빨간 옷이더군요.”
스탠드의 붉은색 물결과 한국팀의 승리로 뿌듯해하면서도 신 회장이 떠올린 단어는 ‘파시즘’과 ‘쇼비니즘’이었다. 12만명을 넘어버린 붉은 악마 조직이 점차 ‘세력화’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에겐 몹시 부담스러운 듯했다.
“동호회에 힘이 들어가면 부작용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붉은 악마의 진로에 대해 월드컵이 끝난 뒤 심각하게 논의할 생각이에요. 시민단체로 남으면서 발전적 해체를 하느냐, 응원을 모토로 한 기업화를 하느냐, 아예 조용히 사라지느냐는 세가지 방향에서 논의가 진행될 거예요.”
신씨는 단국대 치의대 재학 시절 총학생회 간부를 지낸 경험 때문인지 조직 운용에 남다른 자질을 보여왔다. 이 때문에 97년 9월 초대회장을 지낸 뒤 4년여 만에 4대 회장을 다시 맡아 붉은 악마의 변신 모색이라는 중책을 맡게 됐다. 다이아몬드 가공업을 하는 부친의 회사에서 경영수업을 받으며 유학을 갈 생각이었지만 이번 회장 선출로 유학 시기가 다소 미뤄진 것이 불만이라면 불만이다.
그를 중심으로 붉은 악마 회원들이 당장 결정해야 할 문제는 기업 스폰서를 앞으로도 계속 받을 것이냐 여부. 조직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신 회장은 제도적 감시장치를 확고히 한 뒤 소액을 받는 것은 문제가 안 된다는 입장.
“프랑스 월드컵을 겪으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쩔 수 없이 돈이 필요하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어요. 이미 2006년 독일 월드컵에 대비해 적금통장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소액의 스폰서를 받아 계속 적립해 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더라도 이미 붉은 악마의 재정은 아마추어들이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것 같아요. 회계사 등 전문가에게 맡겨야죠.”
신 회장은 7월말에 기업에서 미처 받지 못한 협찬금을 현금으로 받고 머플러 수익금으로 들어오는 5000만원을 합해 손에 쥐게 될 2억5000만원의 자금으로 축구 전문 온라인 잡지를 창간할 생각을 품고 있다.
박현진 기자 witnes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