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악마' 신인철 회장 "'해체' 포함 새 진로 모색"

  • 입력 2002년 6월 6일 18시 55분


“한국-폴란드전 경기응원 때 보니까 모든 국민이 ‘붉은 악마’가 된 것 같아서 이젠 붉은 악마를 해체하는 문제를 심각하게 논의해볼 생각입니다. 모든 국민이 붉은 옷을 입고 응원가를 함께 부르는데 굳이 조직이라는 형태로 응원인력을 동원할 필요가 없죠.”

5일 오전 만난 붉은 악마의 신인철 회장(34)의 얼굴은 초췌해 보였다. 전날 부산에서 한국 폴란드의 격전을 치른 뒤 버스를 타고 새벽에 서울에 닿은 탓이었다. 그러나 붉은 악마의 앞길에 대한 질문을 던지자 거침없이 말을 이어갔다.

“폴란드전 때 붉은 악마를 통해 티켓을 받은 응원단은 2300여명뿐이었어요. 그런데 경기장에 가 보니 한국 관객 5만명이 전부 빨간 옷이더군요.”

스탠드의 붉은색 물결과 한국팀의 승리로 뿌듯해하면서도 신 회장이 떠올린 단어는 ‘파시즘’과 ‘쇼비니즘’이었다. 12만명을 넘어버린 붉은 악마 조직이 점차 ‘세력화’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에겐 몹시 부담스러운 듯했다.

“동호회에 힘이 들어가면 부작용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붉은 악마의 진로에 대해 월드컵이 끝난 뒤 심각하게 논의할 생각이에요. 시민단체로 남으면서 발전적 해체를 하느냐, 응원을 모토로 한 기업화를 하느냐, 아예 조용히 사라지느냐는 세가지 방향에서 논의가 진행될 거예요.”

신씨는 단국대 치의대 재학 시절 총학생회 간부를 지낸 경험 때문인지 조직 운용에 남다른 자질을 보여왔다. 이 때문에 97년 9월 초대회장을 지낸 뒤 4년여 만에 4대 회장을 다시 맡아 붉은 악마의 변신 모색이라는 중책을 맡게 됐다. 다이아몬드 가공업을 하는 부친의 회사에서 경영수업을 받으며 유학을 갈 생각이었지만 이번 회장 선출로 유학 시기가 다소 미뤄진 것이 불만이라면 불만이다.

그를 중심으로 붉은 악마 회원들이 당장 결정해야 할 문제는 기업 스폰서를 앞으로도 계속 받을 것이냐 여부. 조직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신 회장은 제도적 감시장치를 확고히 한 뒤 소액을 받는 것은 문제가 안 된다는 입장.

“프랑스 월드컵을 겪으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쩔 수 없이 돈이 필요하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어요. 이미 2006년 독일 월드컵에 대비해 적금통장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소액의 스폰서를 받아 계속 적립해 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더라도 이미 붉은 악마의 재정은 아마추어들이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것 같아요. 회계사 등 전문가에게 맡겨야죠.”

신 회장은 7월말에 기업에서 미처 받지 못한 협찬금을 현금으로 받고 머플러 수익금으로 들어오는 5000만원을 합해 손에 쥐게 될 2억5000만원의 자금으로 축구 전문 온라인 잡지를 창간할 생각을 품고 있다.

박현진 기자 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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