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라는 것 역시 가면을 벗어버릴 기회를 제공한다. 자신에게 낯선 미지의 세계로 떠난다는 것은 자신에게 친숙했던 상황이 강요했던 규율과 억압으로부터 멀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여행에서 해방감을 느낀다는 것도 같은 의미선상에 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여행을 자신으로부터의 일탈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또 다른 자아와 만난다고 한다. 형식상으로는 일탈일 수 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보자. 일탈을 통해 만나는 것은 자신의 다른 자아가 아니라 두려울 정도로 선명하게 다가오는 자신의 본질 그 자체가 아니던가? 일상에 가려 있어 잘 보이지 않았던 자신의 이기심과 탐욕과 만나며, 가느다란 불꽃으로 살아 있는 젊은 날의 이상과 만난다. 장 그르니에에 따른다면 사람은 자신에게서 도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되찾기 위해 여행하는 것이다.
여행지에서 가면을 벗어 버리고 자신의 적나라한 모습을 드러낸 인간군상을 보여 주는 광고가 있다. 런던의 사치 앤드 사치(Saatchi & Saatchi)에서 제작한 영국 여행사 ‘club 18-30’의 광고다. 이 여행사는 이름에도 표기되어 있듯이 성인이 되는 18세에서 20대를 마감하는 30세까지를 염두에 둔 다시 말해 피 끓는 20대를 주요 타깃으로 삼은 여행사이다. 일탈의 유혹을 더욱 크게 받을 수 있는 연령대임에는 틀림없다. 이 광고가 눈길을 끄는 것은 그 일탈의 상황을 사실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교묘한 비주얼 트릭을 통해 은유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 은유적 장치는 20대의 내면의 풍경을 보여 주는데, 풍경화의 제목은 ‘미지의 세상에서의 섹스’이다.
얼핏 보면 해변에서 각자 나름의 휴식과 오락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 하나의 동작이 섹스 행위로 코드화 되어 있다. 가방에서 수건을 꺼내기 위해 몸을 굽힌 여자 뒤로 한 남자가 하체를 내밀고 기지개를 켜고 있다. 우연찮게 섹스의 동작이 만들어졌다. 마찬가지로 몸을 닦기 위해 허리를 굽힌 흑인 여성 뒤로 한 남자가 원반을 날리고 있는데 마치 여성의 엉덩이를 만지는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남자와 여자의 거리는 떨어져 있지만 이 광고는 될 수 있는 대로 원근감을 배제하여 두 사람의 신체가 붙어 있는 것처럼 표현했다. 나머지 사람들의 동작도 마찬가지. 낯선 곳에서의 사람의 일탈 심리를 설명하는 그림 교과서 같은 이 광고는 가식의 가면을 벗어 던진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을 유머에 실어 표현했다. 타향에선 모두 탕아라는 속설을 입증하기라도 하듯….
십계명에 ‘간음하지 말라’라는 항목이 있다. 그것이 열손가락에 꼽히는 절대 규율로 명시된 것은 그만큼 인간이 간음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는 것을 역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은 음심을 품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가면을 쓰고 있을 뿐이다. 그나마 그 거짓 가면 덕분에 인간의 성적 욕망은 소돔의 광란을 비껴 가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가면은 사회 규율과 도덕을 응축시켜 놓은 머릿 속의 경고 장치인 셈이다.
가면은 거짓말이다. 암묵적으로 용인된 거짓말이다.
김홍탁 광고평론가·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