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을 단지 37도의 열덩어리로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 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 형벌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자신을 불행하게 하는 것은 우리가 미워하는 대상이 말초감각에 의해 그릇되게 파악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알면서도 증오의 감정과 대상을 바로잡지 못하고 있다는 자기 혐오에 있습니다.”
1985년 당시 통혁당 사건의 무기수였던 신영복(61·성공회대 사회과학부장) 교수가 수감생활 중 가족에게 보낸 편지 중 일부다. 이 글은 1988년 주간 ‘평화신문’에 연재되며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의 엘리트 였고 육군사관학교 교관으로 활동하던 1968년 통혁당 사건에 연루돼 감옥에 들어갔다. 스물일곱 한창 나이에 ‘무기수’로 20년 20일을 교도소에서 살았다.
1988년 출간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그가 76년부터 88년까지 감옥에서 휴지와 봉함엽서 등에 깨알같은 써놓았던 편지들을 묶은 것. 햇빛 출판사에서 초판이 나온 뒤 20만부가 넘게 팔렸고 98년 돌베개 출판사에서 그림과 편지 원본을 추가한 증보판도 10만부 가까이 팔렸다.
돌베개 출판사의 김혜형 편집장은 “고립된 공간에서 인간 본연의 보편적 정서를 이타적인 사랑의 시선으로 바라본 기록”이라며 “밖에서 자유를 누리는 사람들이 미처 느끼지 못했던 그의 이야기가 독자들에게 반성과 사색의 시간을 제공했다”고 말했다.
이책에 수록된 그의 글들은 따뜻하다. 수인(囚人)의 신분으로 콘크리트 벽에 갖혀있으면서도 아침이면 귀따갑게 지저귀는 참새 소리와 창문 가득히 물씬 풍기는 흙내에 감사한다. 그는 언젠가 “나무 한그루 한그루가 모여 숲을 이루듯 더불어 체온을 느끼고 함께 사람다운 삶을 애써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희망”이라고 했다. 서로를 깍아내리려는 무한경쟁시대에 사람에 대한 믿음을 갖자는 그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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