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퇴임하는 연세대 송복 교수 "포퓰리즘 경계하자"

  • 입력 2002년 6월 10일 17시 38분


[사진=신원건기자]
[사진=신원건기자]
한국사회의 대표적인 보수우파 지식인으로 평가되는 사회학자 송복(宋復·65)교수가 11일 30년간 재직해온 연세대를 정년퇴임한다. 그는 11일 오전 10시 연세대 광복관에서 ‘한국적 리더십의 특징’에 관한 공개 강연을 통해 정년의 변을 대신한다.

7일 오후 동아일보 문화부의 두 기자는 송교수가 40여년간 살아온 북한산 자락 ‘기자촌’의 자택을 찾아갔다. 2층 서재에서 기자들을 맞은 송 교수는 먼저 “우리집에 방문한 이들은 이 풍광을 꼭 보고 가야 한다”며 서재 옆 옥상으로 안내했다. 장엄하게 펼쳐진 초하(初夏)의 북한산이 집 주인의 호연지기(浩然之氣)와 맞닿아 있는 듯 했다.

송 교수의 서재는 소박했다. “구립도서관에 이미 책 19상자를 기증했고, 학교에 둔 남은 책을 제자들에게 나눠준 뒤 일부만 집에 가져와 소장하려고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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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복 교수는 누구인가

신문기자 시절, 하루에 3갑씩 피우던 담배를 끊은지 22년. 송 교수는 ‘차(茶)’로 마음을 다스린지 오래다. 인터뷰 내내 청자빛 찻잔에 정성스럽게 차를 채워주었다.

-퇴임을 앞둔 소회는….

“같은 대학에 몸담고 있는 정현종 시인이 얼마 전에 ‘견딜 수 없네’란 시를 읊은 것이 있어요. ‘…시간의 모든 흔적들/ 그림자들/ 견딜 수 없네/ 모든 흔적은 상흔(傷痕)이니/ 흐르고 변하는 것들이여/ 아프고 아픈 것들이여’라는 시예요. 저는 그 마지막 구절을 ‘즐겁고 즐거운 것들이여’로 바꿔야 한다고 시인에게 이야기했어요.

저는 대학교수에게 정년이 있다는 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잡지사와 신문사에서 12년, 연세대에 거의 30년을 보냈는데, 만일 정년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제2의 인생을 설계할 수 있겠어요? ”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으신가요?

“나이가 든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에요. 젊었을 때는 갈 길을 몰라 고민하고 방황하지만 나이가 들면 그런 일은 안 해도 되지요. 하나님이 저에게 다시 젊음으로 돌아가라고 한다면 저는 안 가겠다고 할 거예요.” -제 2의 인생은 어떻게 보낼 계획입니까?

“계획은 진작에 세워놨어요. 첫 번째 작업의 성과는 이미 1999년에 ‘동양적 가치란 무엇인가’ (생각의나무)라는 책으로 나왔는데, 그건 ‘논어의 세계’를 다룬 것이지요. 둘째로 맹자의 세계, 셋째로 대학의 세계, 넷째로 중용의 세계, 다섯째로 주역의 세계를 다룰 참이에요. 이런 계획을 세우고 나니 정년퇴임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더군요.

국학이나 동양학을 하는 사람들은 그 학문을 현대인의 지식체계에 맞게 만드는데 한계가 있어요. ‘논어’에 관한 책은 수없이 많지만 대부분 훈고학적 번역이지요. 저는 어렸을 적부터 한학에 익숙한 분위기에서 자랐고, 대학에서는 현대적인 학문 방법론으로 사회과학을 공부했어요. 그러다 보니 고전을 현대인의 지식체계에 맞도록 만드는 것을 저의 ‘의무’라고 생각하게 됐지요.”

조부를 포함해 선대(先代) 3대가 진사였다는 송 교수는 어렸을 때부터 ‘한문의 일상화’ ‘고전의 생활화’를 경험했다고 한다. 아래층에서는 그의 부인이 손자에게 천자문을 가르치는 소리가 들렸다.

-송 교수님에 대해서는 한국사회의 대표적인 보수 우파 지식인이란 평가가 지배적인데요….”

“학기말에 제 강의에 대한 학생들의 평가서를 보면 ‘선생님에 대한 좋지 않은 선입견을 갖고 강의를 듣기 시작했는데 직접 강의를 듣고 보니 선생님을 지지하게 되었다. 선생님의 견해를 존중한다’는 얘기가 많지요. 사실은 저도 젊었을 때는 진보파였고 심지어 ‘과격파’란 이야기도 들곤 했어요. ‘사상계’를 그만두고 ‘청맥’이란 잡지를 만들었는데 거기에 박정희정권을 마구 공격하는 글들을 실었거든요.

그렇지만 젊어서는 진보파가 되고 나이 들어서는 보수파가 되는 것이 정상이지요. 그게 살아가는 과정이예요. 젊은이의 ‘진보적 이상’과 나이든 이의 ‘보수적 현실’, 사회에서는 이 둘이 언제나 균형 잡혀 있어야 해요. 우리 사회는 이런 균형이 없이 보수파에 대해 비판만 하는 것이 큰 문제예요. 젊어서는 진보적인 것이 당연하지만 40세가 넘어서까지 그런다면 그것은 사상이 빈약하고 병든 것이지요.”

-언제부터 스스로 ‘나도 보수적이 됐구나’라고 느끼셨습니까?

“30대 초반 신문기자 시절에 중앙정보부에 잡혀간 적이 있어요. 제가 그 전에 ‘청맥’의 편집장을 할 때 주간을 맡았던 분이 ‘통혁당사건’과 관련되는 바람에 저도 조사를 받은 것이지요. 그 곳에서 목숨이 오락가락하다 보니 나중에는 마음이 텅 비면서 ‘진정으로 이 나라를 바로 이끌기 위해서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지적 물음이 생기더군요. 1960년대의 어려운 현실에서 산업화를 하기 위해서는 독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와 같은 방식의 강력한 리더십과 중앙집권화가 불가피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드러내 놓고 보수 우파의 역할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 같은데요….

“실제로 신문에 글을 쓰면 전화나 편지 등으로 과격하게 욕하는 사람이 많아요. 하지만 거칠게 비판하는 사람보다는 지지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아요. 저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책을 쓰는 사람도 있더군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이야기하지요. ‘일본에서 아사히신문을 욕해서 먹고사는 사람이 약 6000명이고, 미국에서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를 욕해서 먹고사는 사람이 수만 명’이라는데, 그 동안 가족밖에 먹여 살리지 못한 내 덕에 먹고사는 사람이 있다면 다행이 아닌가하고 말입니다.”

-한국사회에서 보수와 진보의 관계를 어떻게 보십니까?

“보수와 진보의 균형 있는 발전이 중요한데 이를 인정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진보를 말하는 사람은 무조건 보수가 나쁘다고 생각하지요. 특히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면서 그런 사람들이 더 많아진 것 같아요. 그것은 이 정권의 포퓰리즘(Populism)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포퓰리즘은 우선 법과 제도를 무시하고 대중과 직접 접촉해서 정치적 정당성을 얻으려 하지요. 또한 원자화된 개인들을 사회적으로 동원하고, 붕당이나 가신 그룹과 같은 ‘국가 속의 국가’를 만들지요. 이런 포퓰리즘은 후진국적 현상이에요.

포퓰리즘의 가장 큰 희생자는 20대지요. 법과 제도의 ‘바깥’을 ‘해방’으로 알고 새로운 세계가 도래할 것으로 기대하며 기성세대를 격렬하게 비판하지요. 그래서 포퓰리즘은 세대 대립을 격렬하게 만들어요. 하지만 20, 30대는 자기들이 포퓰리즘으로 인해 사회의 먹이사슬 속에 희생된 줄을 몰라요. 40대가 돼서야 그 정체를 알고 50대가 되면 포퓰리즘에 분노하지요.”

-현재의 한국 사회는 어떻게 진단하십니까?

“앞으로 15년이 정말 고비라고 봅니다. 첫째 대학에서 문학 사학 철학을 천시하고 우리말을 소홀히 하면서 고급 문화어로서의 우리말이 없어지고 있어요. 고급 문화어로서의 우리말이 없어진다는 것은 우리의 정체성이 없어진다는 것이지요. 우리말이 사라진다는 것은 고도의 추상, 심오한 사상, 첨단의 기술, 달라지는 패러다임을 표현할 길이 없어진다는 것이에요. 둘째는 인재를 기를 수 있는 가풍, 즉 가정교육이 없다는 거예요. 셋째는 국가를 이끌어 갈 ‘창조적 소수(Creative Minority)’를 길러내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이런 상황에서는 15년도 버티기 어렵지요. 이런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부금 입학제’를 실시해서 대학이 그런 인재를 길러낼 수 있는 재정을 확보해야 해요.”

-‘기부금 입학제’는 사회적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비판 의견도 많은데 그런 재정을 국가가 담당하도록 하면 안 될까요?

“국가는 현대사회로 올수록 발전을 억제하고 규제하는 쪽으로 가는 속성이 있어요. 규제만 하는 교육부를 당장 없앨 수 없으니 교육부의 규제로부터 학교를 해방시켜 인재를 키워낼 수 있는 방안을 찾자는 거예요.”

송 교수는 인생의 좌우명이라며 “不苟從 不苟默(불구종 불구묵·현실의 논리를 구차하게 따르지도 않고 현실의 논리에 구차하게 침묵하지도 않겠다)”이라는 말을 써서 보여줬다. 대학에서 보직교수 한 번 해 본적 없다는 송 교수의 깨어있는 ‘비판적 언어’는 밤이 깊어도 멈출 줄을 몰랐다.

3시간에 걸친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는 기자들에게 이 당대의 ‘보수 우파 논객’은 “오늘 내가 한 얘기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가끔 북한산에 올라보라는 것 뿐”이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김형찬 기자·철학박사 khc@donga.com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송복 교수 연보

1937년 경남 김해 출생

1960년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1970년 서울대 신문대학원 석사

1973년 미국 하와이대 석사

1980년 서울대 정치학박사

1956∼61년 ‘사상계’ 기자

1964∼67년 ‘청맥’ 편집장

1967∼74년 서울신문 외신부 기자·차장

1975∼현재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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