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빵점 인생' 중년들의 행복만들기 '누군가의 어깨에…'

  • 입력 2002년 6월 11일 17시 27분


연극에서 고이랑 (왼쪽)이 이혼한 남편 안광남과오랜만에 재회하고 있다
연극에서 고이랑 (왼쪽)이 이혼한 남편 안광남과
오랜만에 재회하고 있다
희망도, 가진 것도 없는 중년은 외롭다. 하지만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어 위로받을 수 있다면 행복할지 모른다.

서울 대학로 문예진흥원 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중인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어’(이만희 원작·김동현 연출)는 사회에서 낙오되고 가정에도 실패한 ‘빵점 인생’이지만 따스한 인간미를 잃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민두상(이봉규)과 안광남(이호재)은 이혼남이자 고교 동창생. 은행 지점장이었지만 퇴출당한 민두상은 사업에 실패하고 택시 운전사로 하루를 먹고사는 안광남과 작은 사진관에서 함께 생활한다.

이들은 세상이 원수같다. 안광남이 “친구도 웬수요 자식도 웬수”라고 말하자 민두상은 “젊은 마누라는 사랑스럽지만 바람이 나면 웬수가 된다”며 신세를 한탄한다. 둘이서 하루 5000원씩 일수찍듯 모으지만 미래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안광남은 전 부인 고이랑(윤소정)의 보이지 않는 도움을 받는다. 고이랑은 민두상에게 가게를 차려주는 식으로 남편을 몰래 뒷바라지한다. 그 사실을 모르는 안광남은 오랜만에 만난 아내를 향해 “돈 좀 꿔달라”며 철없는 농담을 던진다. 이들은 남남이 됐는데도 가슴이 제법 봉곳해진 딸아이가 아빠 주머니에 10만원짜리 수표를 넣어주며 ‘힘내라’고 말해준 사실을 함께 기뻐한다.

각자 아픔을 갖고 있는 이들 중년은 좀처럼 화합하지 못하면서도 조용히 서로의 어깨에 기댄다. 각각의 서로 다른 자리에 서 있으면서 과거의 인연을 소중히 이어간다. 끝내 다시 맺어지지 않지만 연극이 끝난 뒤 가슴이 훈훈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누군가의…’는 배우 이호재의 연극인생 40주년을 기념해 휘문고 후배인 작가 이만희가 헌정한 작품. 이호재는 “외환위기 시절 쉽게 목격할 수 있었던 우리 이웃의 모습”이라며 “털털하고 의리를 중요시하는 안광남이 나와 닮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고 말했다.

윤소정은 이호재와 30년 연극 친구. 그는 “‘초분’ ‘태’ ‘출세기’ 등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적이 있다”며 “탁월한 연기자 친구와 함께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 영광”이라고 말했다. 23일까지. 화수목 오후 7시반, 금토 오후 4시 7시반, 일 오후 4시(월 쉼). 1만5000∼2만5000원. 02-765-5476, 02-760-4800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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