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검은 전사'들의 헤어패션 발재간 만큼 시선 '확'

  • 입력 2002년 6월 13일 20시 35분


“어, 염소뿔이다!” “아니야, 머리에 모를 두 포기 정도 심어 놓은 것 같은데?”

한일월드컵에 출전한 나이지리아의 수비수 타리보 웨스트 선수가 그라운드에 나타나자 염소뿔처럼 혹은 축구장 잔디를 몇 포기 머리에 나눠 심어놓은 모양의 유머러스한 양갈래 헤어스타일이 금세 화제가 됐다.

여러 가닥의 머리를 갈래갈래 꼬아내린 ‘드레드록스(dreadlocks)’를 각기 여러가지 다른 버전으로 선보인 세네갈의 페르디낭 콜리,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시부시소 주마, 미국의 콜비 존스 선수와 ‘디스코 머리’와 비슷한 ‘콘로(cornrows)’ 스타일로 모근에서부터 밭 고랑을 내듯 머리카락을 땋아내린 세네갈의 살리프 디아오 선수도 시선을 모았다.

이들의 공통점은 국적은 달라도 모두 흑인이라는 것. 닭볏 모양의 레드 모히컨 스타일을 선보인 잉글랜드의 스타 데이비드 베컴 못지않게 튀는 헤어스타일로 팬 서비스를 톡톡히 해냈다. 하지만 베컴의 헤어스타일이 순전히 멋을 위한 ‘선택’이었다면 흑인 선수 대부분은 이런 헤어스타일이 모발특성에 따른 ‘강제’였다는 점이 큰 차이.

지난해 머리 땋는 기계 ‘브레이드 매직’을 출시, 최근 영국 런던의 아프리카 문화박물관에 이 제품을 전시하게 된 서울대 산업공학과 이면우 교수는 “흑인은 다른 인종에 비해 지나치게 머리가 가늘고 곱슬거려서 곧게 자라지 못하고 부러져 버리기 때문에 땋거나, 비벼서 꼬아놓거나 아니면 머리카락을 박박 미는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베벌리 힐스의 흑인전용 미용실 ‘밀레니엄 헤어살롱’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이소영 부원장(이가자 헤어비스 청담점)은 “흑인이 스트레이트 머리를 유지하려면 미용실에서 적어도 1주일에 두 번은 손질해 주어야 하는 반면 머리를 여러겹 땋거나 꼬아놓으면 2주에서 1개월은 거뜬히 견딜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스타일의 머리를 고급 미용실에서 하려면 미국의 경우 적게는 600달러(약 75만원)에서 6000달러(750만원)까지 든다. 국내에서도 연예인들을 중심으로 이 머리를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적게는 20만원대, 많게는 150만원대 이상까지 경비가 든다. 이런 이유로 대부분의 흑인 가정에서는 엄마가 큰딸을, 언니가 동생의 머리를 땋아 주는 화목한 풍경이 만들어지곤 한다.

이 비싼 머리를 풀지 않고 감을 방법이 있을까?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 민들레 미용실의 구경희 원장은 “이들은 매일 스프레이식 세척제를 골고루 뿌린 뒤 샤워기로 헹궈낸다”고 말했다. 머리에 만들어진 고랑과 두둑 사이사이에 간편하게 뿌릴 수 있도록 긴 빨대가 달린 스프레이형 샴푸가 개발돼 판매되고 있는 것.

한편 흑인들이 이러한 헤어스타일을 고집하는 데는 실용적인 목적 외에 백인 지배의 세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역사적인 배경도 있다. 특히 ‘드레드록스’는 20세기초의 에티오피아 왕 하일레 셀라시에 1세(1892∼1975)를 재림 예수로 추앙하며 흑인들의 아프리카 복귀 등을 주장했던 자메이카의 라스타파리안교 신자들이 즐겨하던 스타일이었다.

김현진기자 bright@donga.com

▼ 레게머리에 원색 방울 주렁

세네갈의 수비수 페르디낭 콜리(29)는 머리를 가닥가닥 나눈 뒤 가늘게 땋아 내리는 일명 ‘레게 머리’를 했다. 영어로는 ‘브레이드(braid)’ 또는 ‘플레이트(plait)’로도 불린다. 콜리는 여기에 빨강, 노랑, 초록이 선명한 자메이카풍 머리 방울을 매달았다. 최근에는 기계가 개발돼 머리를 땋는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각 머리 가닥의 굵기를 1㎝ 정도가 되도록 해서 손으로 땋으려면 꼬박 12시간이 걸린다. AP연합

▼ '뿔난 머리' 플랫톱 스타일

나이지리아의 수비수 타리보 웨스트(28). 머리 정수리 부분만 머리카락을 남겨두는

‘플랫 톱(flat-top)’ 스타일을 기본으로가늘게 꼰 머리 가닥을 모아 두 갈래로 묶었다. 흑인 헤어스타일의 전형으로 보기도 힘들고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오지만 나름의 자존심이 담겨 있다. 염소뿔처럼 보이는 머리끝을 나이지리아팀 유니폼의 줄무늬색인

초록으로 염색했기 때문. AP연합

▼ 머리에 꿀벌떼가 내려앉은듯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미드필더 시부시소 주마(27)는 짧은 '드레드록스' 머리를 연출했다. 머리 가닥의 끝부분을 노랗게 염색해 마치 꿀벌떼가 머리에 내려앉은 느낌. 원래 악성 곱슬머리의 흑인을 제외한 사람들이 '드레드록스' 스타일을 가지려면 머리카락을 가닥가닥 나눈 뒤 가는 철사를 심으로 넣어 파마를 하는 '아프로 펌(Afro Perm)'을 먼저해야 한다. 그 후 푸석푸석해진 머리카락 끝을 비벼 꼬아준다. AP연합

▼ '밭고랑' 연상 콘로 스타일

모근부터 머리 끝까지 꼼꼼히 땋아내린 콘로 스타일은 땋은 결에 따라 머리에 밭고랑같은 홈이 생긴다. 자신의 머리로만 땋기도 하고 가발이나 얇은 실을 넣어 진짜 머리카락과 함께 땋아나가기도 한다. 보다 풍성하고 세련된 느낌을 낼 수 있기 때문. 나이지리아의 공격수 누앙쿼 카누(25) 도콘로 머리를 했다. 푸석푸석한 느낌이 나도록 가느다란 웨이브를 넣는 아프로 펌을 먼저 한 뒤 땋아야 매듭이 촘촘하고 오래 간다. AFP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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