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클래식 공연 역사상 최고가(R석 30만원)만큼이나 이날 공연은 많은 화제를 낳았다. 가장 사람들의 눈길을 끈 것은 두 사람의 화려한 ‘관객 서비스’. 푸치니 ‘나비 부인’, 베르디 ‘오텔로’ 등의 ‘사랑의 2중창’에서 두 사람은 부부라는 ‘지위’를 이용, 과감한 키스와 목덜미 애무 등 뜨거운 무대 연기로 객석을 사로잡았다.
이날 공연에서는 객석에 자리한 소프라노 조수미와 알라냐의 ‘교감’도 눈길을 끌었다. 알라냐는 무대에 등장하자마자 1층 가장 앞열에 디자이너 앙드레 김과 나란히 앉은 조씨를 발견하고 키스 제스처를 보냈다. 푸치니 ‘라보엠’ 1막 2중창으로 앙코르 마지막 곡을 마감한 뒤에도 알라냐는 조수미 앞으로 달려가 거듭 인사를 나누었다. 조수미는 연주회 감상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환상적이에요. 할 말이 없네요’라고 답했다.
월드컵 기간 중 입국한 알라냐의 ‘축구 사랑’도 무대 뒤의 화제. 부부는 매니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11일 인천 문학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프랑스-덴마크전을 관람했다고 예술의 전당 관계자는 밝혔다. 이 관계자는 ‘두 사람이 소리를 지르지는 않고 몸만 사용해 응원했다고 해명(?)했다’고 말했다. 프랑스의 16강 탈락에 대한 알라냐의 첫마디는 ‘그래도 이탈리아가 남아있다’는 것. 알라냐는 부모가 시칠리아계인 이민자 출신이다.
이에 앞서 10일 열린 오케스트라 리허설에서는 알라냐가 ‘축구 한-미전이 있으니 빨리 끝내자’고 제안, 3시 30분에 리허설을 마쳤다. 지휘자가 안톤 과다뇨가 ‘시간이 부족한데…’라며 난색을 표시하자 게오르규가 그를 껴안으며 ‘애교’를 부리기도 했다고 반주를 맡은 코리안 심포니의 한 단원은 밝혔다. 알라냐는 앙코르 순서 뒤 마지막 인사를 보내는 순간에도 공을 차는 시늉을 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한국 축구 대단하다, 잘싸웠다’는 메시지를 객석에 전달하기도 했다.
방한하는 동안 이들을 수행한 예술의 전당 관계자는 ‘두 사람이 개런티 숙소 문제 등에 있어서는 까다로운 면을 보였지만 주변 사람에게는 더없이 친절하다’고 말했다. 사소한 편의에도 감사의 인사를 빼놓지 않으며, 부드러운 미소로 주위를 ‘녹이는’ 면이 있다는 것. 이런 친절에는 예술의 전당 측의 ‘깜짝 파티’도 일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의 입국일인 7일은 알라냐의 생일. 이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던 예술의 전당 측은 두 사람이 묵을 리츠칼튼호텔 ‘프레지덴셜 스위트’룸에 축하 케이크와 장식을 준비해 게오르규가 눈물을 글썽일 정도로 두 사람을 감동시켰다는 것.
12일 연주회가 끝난 뒤에는 예술의 전당 출연자 출구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한국예술종합학교 성악과 학생들이 두 사람을 위해 즉석 합창을 하는 ‘깜짝 세리머니’가 다시 한번 두 사람을 감격시켰다. 부부는 콘서트 후 늦은 저녁을 들면서 ‘감동을 안겨준 사건이 너무나 많았다. 반드시 한국에 다시 오겠다’고 다짐했다고 예술의 전당 관계자는 전했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 리뷰
기자는 성악가의 특징을 ‘연인’에 빗대 부르기를 즐긴다.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천진한 연인, 플라시도 도밍고는 많은 것을 줄 수 있는 연인, 호세 카레라스는 열정의 연인 등.
12일 내한공연을 가진 로베르토 알라냐와 안젤라 게오르규를 이 공식에 비추어보면, 알라냐는 ‘세련된 연인’이며, 게오르규는 물기 머금은 ‘청초한 연인’이다. 그들의 음성연기에서 정해진 용량을 넘어서는 과장이나 불필요한 장식은 발견하기 힘들며, 전체가 정해진 설계도에 따라 완벽하게 잘라맞춘 듯 반듯하다. 이런 말끔함과 세련됨은 이날 예술의 전당 무대에서 100% 입증됐다.
공연이 끝난 뒤 많은 관객이 ‘음반에서 듣던 감흥을 훨씬 넘어서는 감동을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그 이유는 대략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을 듯 하다.
우선 두 사람의 빼어난 용모와 제스처, 무대위의 동선(動線) 등 모든 시각적 연기적 효과가 완벽히 어울려 한편의 완벽한 볼거리를 낳았다. 그리스 여신같은 미모의 게오르규는 ‘물의 요정’처럼 몸을 자연스레 휘감은 듯한 푸른색 연주복으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라 트라비아타’ ‘오텔로’ ‘나비 부인’등 유명 오페라의 2중창들에서 촉촉한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자연스레 호흡을 맞추는 두 사람의 연기는 실제 오페라 무대 이상이었다. 앙코르 무대에서 두 사람은 때로 허리를 껴안고 무도회장의 흥겨운 분위기를 연출하는가 하면 객석을 향해 키스 신호를 보내며 환성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두 사람은 소외되기 쉬운 무대 뒤편 합창석에도 시종일관 따뜻한 인사를 보내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에 더해 아무리 칭찬해도 지나치지 않을 일이지만, 두 사람의 노래는 그대로 음반으로 발매하더라도 수많은 편집과정을 거친 스튜디오 녹음과 전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기술적인 완벽을 유지했다. 사소한 음높이의 흔들림이나 호흡의 차이조차 발견하기 힘들었다.
‘빅3’테너를 비롯한 많은 1급 성악가들이 공연장과 음반에서 많은 기교의 편차를 보이는 것과 대조됐다. 코리안 심포니의 반주도 흔들림없는 뒷받침이 되어주었다.
종종 ‘목욕탕 소리’라는 악평을 듣기도 하는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도 이날만큼은 두 사람에게 완벽한 조건을 제공했다. 음반으로 들을 때 게오르규의 목소리에는 한가지 독특한 점이 발견된다. 낮은 음역에서는 비교적 작은 음량의 소리가 이어지다 어느 정도의 높이 이상에서 압도적인 음량의 포르티시모가 쏟아진다는 점이다. 이는 간혹 다른 두 사람의 소리가 합성된 듯한 어색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예술의 전당의 풍요한 울림은 이런 특징이 잘 나타나는 ‘어떤 개인 날’에서조차 소리의 ‘이음매’를 없애버렸다. 알라냐의 경우도 고음역의 포르티시모에서 파바로티 등 다른 인기테너들에 비해 훨씬 다양한 배음(倍音)성분이 섞여 또렷하지 못한 인상을 줄 때가 있다. 그러나 이런 그의 포르티시모도 훨씬 따뜻하고 강력하게 울렸다.
기자는 알라냐에 대해 ‘제4의 테너’라는 평가를 그동안 짐짓 무시해왔다. 노래 자체에 깃든 세공(細工)은 감탄할 정도이지만, 파바로티 도밍고 카레라스에게서 느껴지는 육중한 ‘한방’과 청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를 느끼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날 공연으로 생각을 바꾸어야만 했다. 그에게서는 노래에 깃든 세공 자체가 사람을 압도하는 ‘카리스마’였기 때문이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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