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명문인 서울 경신고 축구팀에서 미드필더로 활약하다 불의의 사고로 전신마비 장애인이 된 박정(朴政·28·대구대 회화과 1년)씨에게 이번 한일 월드컵축구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축구 선수의 꿈을 접고 화가의 길을 걷고 있지만 마음만은 그라운드를 누빈다.
대표팀의 이을용 선수는 강릉중 1년 후배, 유상철 선수는 경신고 3년 선배라 한국팀에 대한 느낌도 남다르다.
입으로 그림을 그리는 구필(口筆) 화가로 대학에서 미술공부를 하고 있는 그는 8일과 10일 휠체어를 타고 대구월드컵경기장에 나가 ‘붉은 악마’ 회원 100여명에게 페이스 페인팅을 해주며 응원했다.
입에 문 붓으로 태극기와 거미 등을 그리는 데 걸리는 시간은 1분 정도. 그의 능숙한 솜씨에 외국인들도 감탄했다. 14일 저녁에는 포르투갈전을 보기 위해 대구대 노천강당에 모인 학생들에게 페이스 페인팅을 해주며 ‘대∼한민국’을 함께 외쳤다.
“몸은 불편하지만 페이스 페인팅을 하며 월드컵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게 정말 기쁩니다. 함께 뛰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해 잃어버린 다리의 감각이 살아나는 듯 근질근질하고요.”
견디기 어려운 좌절과 시련을 이겨내고 그림 공부에 열중하고 있는 박씨는 “뻗어가는 우리팀의 기운을 볼 때 18일 이탈리아전도 승리할 것”이라며 29일 대구경기장에서 열리는 3, 4위전에도 페이스 페인팅을 하며 월드컵에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대구〓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