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하는 전술조차 객관적 데이터에 기초해 고안해 내는 히딩크 감독. 한가로이 돌고 있는 풍차와 겉치장용 튤립 속에 숨어 있는 네덜란드적 사고와 계산 방식은 무엇일까. 네덜란드와 네덜란드인에 관해 잘못 알려진 사실들은?
●이익을 보려면 투자부터 해라
네덜란드어로 ‘코스트 하트 포르 더 바트 애트(Kost gaat voor de baat uit)’, 영어로 표현하자면 ‘Cost comes before profit’이다.
네덜란드인이라면 세 살부터 여든까지 귀에 못이 박이게 듣는 속담이다. 네덜란드인의 경제관, 인생관을 집약적으로 드러내는 말로 꼽힌다. 목표를 이룰 때까지 연습에 드는 돈, 시행착오에 따른 비용발생을 쓸데없는 지출이라고 아까워하지 말라는 뜻이다.
2001년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프랑스에 0-5로 패한 뒤 히딩크 감독은 “창피하지 않다. 좋은 경험이었다”고 답했다. 고비용의 연속적인 해외전지훈련, 패배하더라도 강팀과의 A매치를 통해 내공을 쌓은 것은 네덜란드인인 히딩크 감독의 관점에서는 ‘승리’를 회수하기 위해서라면 당연히 물어야 할 수업료였다.
●회계학 중시와 칼뱅주의
개막일 51일 전인 4월9일의 기자회견에서 히딩크 감독은 “대표팀의 16강 진출 가능성은 현재 50%다. 앞으로 하루에 1%씩 향상시켜 월드컵 개막과 함께 100%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네델란드인인 그로서는 결코 은유나 수사가 아니었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팀을 맡은 이래 어디로 전지훈련을 가든 노트북 컴퓨터를 들고 다니며 선수 개개인의 데이터를 관리했다. 감을 믿지 않고 수치에 기초해 전술을 짜고 엔트리를 결정했다. 상대팀의 데이터도 똑같이 중요하게 취급했다.
‘철저한 계산’ ‘숫자를 믿어라’는 네덜란드인에게는 종교적 뿌리가 있는 사고방식이다. 네덜란드는 16∼17세기 전 유럽을 휩쓴 종교개혁의 와중에 열렬한 칼뱅주의의 깃발 아래 섰다. 칼뱅주의는 열심히 일하는 것 못지않게 일해서 번 돈을 최후의 한푼까지 철저히 잘 계산해 필요한 데 지출하는 것을 진정한 신교도의 자세로 강조했다. 물보다 낮은 땅에 살며 수리관리를 해야 하는 생존여건도 네덜란드인들이 ‘숫자관리’에 신경을 곤두세우게 만들었다. 이런 복합적인 배경에 힘입어 회계학이 발전했다. 1602년 세워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장부정리 방식은 오랜 세월 ‘회계의 전범’으로 꼽혀 왔다. 네덜란드 고교생들은 지금도 선택과목인 경제에서 회계를 배운다.
네덜란드인들의 투자 판단 기준 1순위는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다. 나 자신의 만족을 위한 소비를 부정적으로 보는 칼뱅주의 사고방식은 다음 세대에 도움이 되는 지출을 ‘신의 뜻에 합당한 소비’로 꼽았다.
종교의 일상 지배가 약화된 현대에도 이런 경제관념은 사고방식의 주요 부분으로 남아 있다. 히딩크 감독은 “나는 단순히 이번 월드컵 무대만을 위해 뛰고 있는 것은 아니다. 궁극적으로 한국 축구가 세계무대에서 경쟁력을 갖춘 강력한 팀으로 가는 길에 작은 기여를 하고 싶다”고 말해 왔다.
●오버레흐(overleg)
직역하면 ‘책상 위에 놓는다’는 말. 네덜란드의 의사결정방식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단어다. 결론을 내기 위해서는 참여한 이해 당사자들이 모두 자기 의견을 내놓아 ‘책상 위에 쌓는’ 방식으로 의견을 개진한다. 회의 종료시간을 정해 놓고 시간이 되면 서둘러 결론을 내는 것이 아니라 모두 합의할 때까지 지치도록 회의를 계속한다. 과정이 긴 만큼 오버레흐를 통해 난 결론은 누구도 쉽게 뒤집지 못한다.
히딩크 감독은 경기 한달여 전까지 베스트 11을 결정하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월드컵 국가대표팀 구성방식에 견주어 이례적인 일이었다. “빨리 베스트 11을 결정해 훈련해야 한다”는 한국 축구 전문가들의 우려가 빗발쳤지만 히딩크 감독 자신은 멀티플레이어가 될 수 있는 선수를 고르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70명이 넘는 선수들을 테스트하고 관찰하며 코칭스태프와 긴 ‘오버레흐’를 거쳤다. 그 결과 결정된 엔트리에 대해서는 누가 어떻게 비판해도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은 리하르트 바그너가 작곡한 가극. 죽지도 못하고 영원히 바다를 떠돌아야 하는 저주받은 운명의 네덜란드 선장에 관한 전설을 기초로 했다. 이 전설에는 한때 해상왕이었던 네덜란드에 대한 인접 국가들의 공포가 묻어 있지만 그보다는 유랑하는 네덜란드인의 기질을 드러낸다.
네덜란드인들은 자기 속에 머물지 않고 다른 세계로 뛰쳐나간다. 오랜 세월 나라가 없었던 유대민족처럼 세계 어느 곳에서든 새로 뿌리를 내리고 그 나라 문화 속에 스며들어 살아간다. 그 저력은 철저한 언어교육에서 출발한다. 초등학교에서는 영어, 중고교 인문계열에서는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를 필수로 가르치고 라틴어와 그리스어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한다.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라면 5개국어 정도는 서툰 수준이라도 하게 된다. 히딩크는 모국어인 네덜란드어에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 5개국어를 구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누(Nu)
지금(Now)이라는 뜻의 네덜란드어. 이웃나라 독일어의 ‘고향(Heimat)’이 시공간적으로 ‘끊임없이 어딘가로 돌아가야 한다’는 모천회귀성의 정서를 드러낸다면 네덜란드어에는 ‘누’가 있다.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라’는 성경 구절에 충실한 삶의 자세이자 그곳이 어디이며 무슨 일을 하든 지금에 최선을 다하고 즐긴다는 것이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팀을 맡은 후 “선수들의 과거를 존중하지만 중요한 것은 현재”라고 말해 왔다.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가 기준인 그 앞에서 화려한 경력, 학연, 지연 등은 모두 무의미한 것이었다.
월드컵 개막 직전 모국의 신문 텔레그라프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히딩크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만약 6월을 끝으로 내가 한국을 떠나게 될지라도 소중한 추억으로 남기를 바란다. 그것은 영광스러운 이별이 될 수도, 불명예스러운 퇴진이 될 수도 있다. 어쨌든 한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의 나는 한국팀의 감독이라는 것이다.”
●커튼을 젖혀라
암스테르담이건 헤이그건 밤이 되면 사람들은 밖으로 난 창의 커튼을 열어 젖힌다. 칼뱅이 종교개혁할 당시 남이 안 보는 데서 음습한 짓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커튼을 열어 놓은 것이 기원이다. 히딩크 감독이 호텔 객실에서 TV로 경기 화면을 보며 오래도록 잠들지 못하는 모습이 커튼을 열어 젖힌 창을 통해 TV 카메라에 잡힌 일도 있다.
신 앞에 투명해야 한다는 프로텐스탄티즘의 윤리는 어떤 편견도 두지 않는 개방적인 사고로 발전했다. 다양한 생활방식과 사고를 허용해 데카르트, 존 로크 등 자기 나라에서 환영받지 못한 사상가들이 모국보다 네덜란드에서 더 활발하게 활동했다. 네덜란드는 인구 중 15%가 유색인종이며 대표적인 다민족 다문화국가로 꼽힌다. 수도 암스테르담은 대마초가 허용된 마약특구다.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허용하기도 했다. 성문제에도 중립적이라 암스테르담의 섹스뮤지엄은 세계적인 관광명소다.
사람들은 히딩크 감독이 아니었으면 이천수와 김남일이 머리염색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잉글랜드의 비아냥, ‘레츠 고 더치’
한 테이블에서 어울려 식사한 뒤에도 각자 자기 먹은 몫을 낼때 말하는 ‘레츠 고 더치(Let’s go Dutch)’. ‘Dutch treat’라고 하며 국내에는 ‘Dutch pay’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네덜란드 사람들에게는 몸에 익은 계산법이다. 그러나 스스로 더치 트리트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네덜란드인들이 ‘황금시대’로 자부하는 17∼18세기, 대서양 지배권을 놓고 경쟁을 벌였던 라이벌 영국인들이 네덜란드인들의 씀씀이 방식에 부정적 감정을 담아 만들어냈다. 더치를 부정적인 형용사로 쓰는 영어의 편견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자살행위라는 뜻의 ‘Dutch act’, 술김에 만용부리기인 ‘Dutch courage’, 무슨 일에든 사사건건 비판조인 사람을 일컫는 ‘Dutch uncle’도 있다.
●네덜란드 vs 홀란드vs 더치
네덜란드인들은 자국을 ‘Netherlands’ 혹은 입헌군주제의 국체를 드러내는 ‘Royal Netherlands’라고 부른다. 국제사회에서 달리 통용되는 국명으로 ‘Holland’가 있고 네덜란드 사람, 네덜란드어를 일컫는 영어의 ‘Dutch’가 있지만 ‘Netherlands’에 비해서는 격이 떨어진다.
홀란드는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네덜란드가 독립국가로 유럽사에 첫 등장할 때 중심이 되었던 주다. 화란(和蘭)도 홀란드의 음차다. 오늘날은 남북 홀란드주로 나뉘어 있으며 수도 암스테르담은 북 홀란드주에 포함돼 있다. 어쨌든 독립 이전의 부분적 영토인 홀란드로 호칭하는 것은 폄훼.
더치는 고대 게르만어로 ‘백성’이라는 뜻이다. 라틴어가 지배계급의 언어였던 중세에 피지배계급을 지칭하는 말로 당시 스페인 잉글랜드 중심의 유럽사회에서 미미했던 네덜란드의 지위를 드러낸다. 국호인 네덜란드는 ‘바다보다 낮은 땅’이라는 뜻이다.
●거스 히딩크? 휘스 히딩크?
네덜란드에 가서 거스 히딩크라고 열을 올리면 “누구?”라는 반문을 들을 것이다. Guus Hiddink의 현지발음은 ‘휘스 히딩크’에 가깝기 때문. 네덜란드어에서 ‘g’는 한국어로는 적절히 표현할 방법이 없는 연구개 마찰 유성음이다. 그나마 ‘ㅎ’이 가깝다. 같은 이치로 화가 반 고흐(Van Gogh)의 네덜란드어 발음은 ‘반 호흐’에 가깝다. ‘k’는 단어 앞머리에 오면 ‘ㅋ’으로 읽히지만 마지막 음일 경우 ‘ㄲ’으로 발음한다. 그러나 지금 네덜란드 사람들은 오히려 한국인들이 부르는 ‘거스 히딩크’에 관심을 갖고 있다. 당초 한국 언론도 네덜란드어 현실발음을 외래어 표기법에 맞춰 수용해 그의 이름을 ‘휘스’로 표기하기로 했었다. 그러나 지난해 한국팀 부임 직후 히딩크 감독이 자신의 이름은 일반적인 네덜란드어 발음 법칙과는 달리 “거스”라며 거스 히딩크로 불러줄 것을 당부해 고쳐 표기하고 있다.
●네덜란드 축구팀은 왜 오렌지군단?
두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네덜란드의 국부인 윌리엄 오렌지공(公)의 이름에서 유래됐다는 것이다. 윌리엄 오렌지공은 프랑스 북부의 오렌지 나소 공국의 왕자 출신으로 오렌지에서 온 윌리엄이라는 의미다. 또 하나는 네덜란드 국기에서 유래했다는 설. 네덜란드의 국기는 파랑 빨강 흰색의 3색으로 구성됐는데 과거에는 빨간색이 금방 바랬다고 한다. 상선에 삼색기를 달고 다니면 바닷바람으로 빨간색이 오렌지빛으로 바래 오렌지가 네덜란드를 상징하는 색으로 인식됐다는 것이다. 네덜란드어로 오렌지는 ‘오란녀’로 발음된다.
●네덜란드를 관광하려면
2박3일이면 주요 관광지를 둘러볼 수 있다. 우선 경제와 행정의 중심지인 암스테르담과 헤이그를 빼놓을 수 없다. 암스테르담은 전세계 150여개국에서 온 70만여명이 사는 국제 도시로 크루즈를 타면 운하의 도시 암스테르담의 구 시가지를 구석구석 살펴볼 수 있다. 반 고흐 미술관과 섹스 박물관 등 40여개의 미술관과 박물관이 명물. 헤이그에서는 베아트릭스 여왕의 거처와 평화의 궁전이라 불리는 국제사법재판소, 이준 열사의 기념관에 들른다. 이 밖에 네덜란드의 목가적인 풍경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잔즈 스칸스 풍차마을과 댐으로 조성된 ‘갇힌 바다’ 아이젤메어를 볼 수 있는 폴렌담도 필수 여행 코스다. 네덜란드의 명물인 얇은 팬케이크와 하이네켄 맥주를 맛보는 것도 잊지 말자. 네덜란드 국적기인 KLM네덜란드 항공(02-733-7878·klm.co.kr)이 서울∼암스테르담 직항편을 주 5회 운항한다.
도움말〓예룬 라머스 네덜란드투자진흥청 대표(역사학박사) 강영안 서강대(철학과), 김영중 장붕익 한국외국어대(네덜란드어과) 교수·조성하 동아일보 여행전문기자
정은령 기자 ryung@donga.com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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