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월드컵 8강에 진출하고 월드컵 거리응원이 온 국민의 축제로 확대되면서 적지 않은 시민들에게 이제 월드컵은 ‘삶의 모든 것’처럼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됐다.
한국팀이 16강 진출이라는 염원을 달성한데다 8강까지 진출하자 많은 시민들은 겉으로 ‘4강은 물론 우승까지 가자’고 외치지만 내심으로는 ‘이제는 할 만큼 했다’는 생각에 목표를 이룬 뒤 찾아오는 ‘허무’와 월드컵이 거의 끝나간다는 ‘공허감’마저 느끼고 있는 상태다.
회사원 공진규씨(28)는 “경기가 없으니까 왠지 허전하고 불안해 일손이 잡히지 않는다”며 “8강전 이후의 경기가 남아있지만 벌써부터 월드컵이 끝나면 무슨 낙으로 살아야 할지 걱정이다”고 말했다.
시민들 사이에 이 같은 허탈감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대학생 김종민씨(28)는 “한국전이 없는 날이면 귓가에 온통 ‘대∼한민국’ ‘오∼필승 코리아’ 소리만 맴돌고 공부하는 데 집중이 안 된다”며 “경기가 없으니까 삶에 대한 의욕이 떨어지고 무기력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이 둘을 둔 주부 김영미씨(32·서울 서초구 잠원동)는 “언제부터 한국팀 경기를 기다리는 게 유일한 낙이 됐다”며 “월드컵이 끝나면 찾아올 허탈감을 해소하기 위해 월드컵이 끝나는 대로 가족 휴가를 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인터넷상에도 경기가 없어 허전하고 월드컵이 끝나면 뭘 할지를 걱정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인터넷 ‘마이클럽’ 게시판에는 한 네티즌이 “하루 종일 응원가 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온다. 경기가 없으니까 허전하고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글을 올렸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지금 나타나기 시작하는 현상들은 엄청난 열광 뒤에 나타나는 일시적 ‘허탈감’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임상심리전문가 이민식(李玟植)씨는 “축구에 광적으로 미치고 어린애들처럼 좋아하는 것을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볼 수도 있지만 건강한 의미에서 일시적인 퇴행현상으로 볼 수 있다”며 “열광 뒤에 오는 허탈감 등은 휴가를 갔다 온 뒤 일하기 싫은 것과 같은 현상”이라고 말했다.이씨는 “시민들은 월드컵이 끝나는 것에 대해 초조해하지 말고 축구와 대표팀에 대한 얘기를 다른 사람들과 계속해 나가면서 천천히 잊어가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연세대 사회체육과 원영신(元英信) 교수는 “월드컵 이후에 한일전이라든가 남북교류전 등 축구 관련 이벤트를 계속 마련해 국민적 열기를 서서히 식힘으로써 허탈감을 극복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박민혁기자 mhpark@donga.com
김선우기자 sublim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