槪-기개 개 盡-다할 진 압撤-거둘 철
대나무는 梅花(매화), 蘭草(난초), 菊花(국화)와 함게 四君子(사군자)의 하나로 예로부터 선비들의 사랑을 톡톡히 받아 왔다. 그래서 詩書畵(시서화)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곤 했다.
대나무가 사랑을 받는 까닭은 사시사철 푸르며 곧고 쉽게 휘어지지 않아 선비의 節槪(절개)를 상징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대쪽같은 성품’이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孤山(고산) 尹善道(윤선도·1587-1671)는 다음과 같이 대나무를 노래했다.
나모도 아닌 거시 풀도 아닌 거시
곳기ㅱ 뉘시기며 속은 어이 뷔연ㅱ다
뎌러코 ㅱ시(四時)예 프르니
그를 됴하 하노라
-五友歌(오우가) 중에서-
그러나 造物主(조물주)는 盡善盡美(진선진미), 完全無缺(완전무결)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나무가 그처럼 훌륭한 점이 있는 反面(반면), 致命的(치명적)인 弱點(약점), 즉 잘 쪼개진다는 短點(단점)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틈새로 칼을 넣고 조금만 비틀면 거침없이 쪼개진다. ‘破竹之勢’는 바로 대나무의 이런 특성을 比喩(비유)해 나온 말이다.
중국의 삼국시대는 魏蜀吳(위촉오) 세 나라가 割據(할거)하던 시대다. 晉(진)의 武帝(무제·265-290)는 삼국 중 마지막 남은 吳(오)나라를 치기 위해 유명한 學者(학자)이자 鎭南大將軍(진남대장군)이었던 杜預(두예·222-284)를 총사령관으로 任命(임명)해 都邑(도읍)인 建業(건업·현재의 南京)을 壓迫(압박)해 갔다.
杜預의 대군이 武昌(무창)에 駐屯(주둔)할 때였다. 최후의 決戰(결전)을 위한 작전을 짜고 있는데 參謀(참모) 하나가 말했다.
“지금은 늦은 봄입니다. 머지않아 여름이 되면 장마철이라 이곳 武昌은 강물이 넘칠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일단 撤收(철수)했다가 겨울에 다시 치면 어떨까요?”
그러나 杜預는 단호하게 말했다.
“안될 말이오. 지금 우리는 勝勢(승세)를 타고 있소. 그것은 대나무를 쪼갤 때와 같소. 틈새를 비집고 칼을 넣어 조금만 비틀어도 힘들이지 않고 대나무를 쪼갤 수 있소. 이 때를 놓치지 말고 내친 김에 곧장 쳐들어갑시다.”
결국 杜預의 대군은 大擧(대거) 建業을 쳐서 吳나라를 멸망시키고 삼국을 統一(통일)하게 된다. ‘破竹之勢’란 ‘대나무를 쪼개듯 거침없이 몰아치는 것’을 뜻한다.
한국 축구가 破竹之勢로 連勝行進(연승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내친 김에’ 아예 決勝(결승)까지 가자.
鄭錫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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