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송수남 수묵화展, 단순하되 쉼없이 '순수' 되찾기

  • 입력 2002년 6월 25일 17시 24분


수묵화의 새로운 깊이를 보여주는 송수남의 2001년작
수묵화의 새로운 깊이를 보여주는 송수남의 2001년작
최근 한국화가 송수남(64)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종로구 관훈동 노화랑에 한국 추상미술 모노크롬의 대부인 박서보(71)가 들어섰다. 박 화백은 전시장을 둘러본 뒤 “음 좋아, 훨씬 좋아졌어. 단순함 속에 담겨있는 먹의 깊이가 매력적이야”라고 말하곤 웃는 얼굴로 송 화백에게 악수를 청했다. 동그란 뿔테 안경을 쓴 송 화백은 넉넉한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겸연쩍은 듯 “쑥스럽습니다”라는 말로 화답했다.

송수남의 개인전이 7월5일까지 연장 전시에 들어간다. 송 화백은 6년만에 열리는 이번 개인전에서 절제와 추상의 미학이 돋보이는 수묵화 근작을 선보인다.

작품은 일견 단조롭다. 한 일(一)자의 선이 빼곡할 뿐이다. 어떤 것은 가로로 누워 있고 어떤 것은 세로로 서 있다. 선의 단순 반복이다. 그러나 지루할 듯 하지만 지루하지 않다. 그 선들을 보고 또 보면 잡념이 사라진다. 반복이 가져다주는 무념무상의 세계, 순수의 세계다.

그에 걸맞게 작품엔 군더더기가 없다. 먹의 농담과 강약 만으로 모든 것을 말해준다. 담백하고 투명하다. 한국 수묵화의 깊이를 한층 심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이 대목에서다.

한 일자의 선은 가장 단순하지만 가장 완벽하고 가장 원초적이다. 곧음과 정직이다. 작가의 말.

“선을 긋는 행위는 하나가 모든 것이 되고 모든 것이 다시 하나로 귀결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곧 생명의 태동이다. 나는 이 혼탁한 세상에 삶의 순수를 되찾기 위해 선을 그리고 또 그린다.”

따라서 작가에게 선을 긋는 작업은 일종의 선(禪)의 수행이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간결하고 추상적인 선 하나 하나가 마치 대나무 숲을 연상시킨다. 거기서 전해오는 댓잎 부딪히는 소리의 서늘함. 물질의 세계는 온 데 간 데 없고 명징한 정신의 세계만이 남는다. 이 더운 날씨, 느슨해진 우리의 정신을 일깨운다.

이처럼 깊고 투명한 수묵화에 작품 이름을 붙인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누가 되는 일일까. 그래서인지 작가는 이번 전시작에 작품 이름을 하나도 붙이지 않았다. 이 역시 절제의 미학이다. 02-732-3558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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