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이었어요. 저는 엄마 아빠랑 우연히 폐허가 된 놀이공원에 갔지요. 엄마 아빠는 거기에 차려진 음식을 드시더니 글쎄 돼지로 변해버렸지 뭐예요. 알고보니 그곳은 800만명의 신(神)들이 쉬어가는 대형 목욕탕이고, 엄마 아빠는 손님 음식을 먹어치운 벌로 돼지가 된 거였어요.
목욕탕 주인은 ‘유바바’라는 마녀였는데요, 일하지 않으면 모두 동물로 만들어버리죠. 저는 ‘하쿠’라는 남자 아이의 도움으로 목욕탕 청소일을 얻었어요. 대신 유바바는 제 이름을 빼앗더니 ‘센’으로 만들어버렸죠. 유바바는 남의 이름을 뺏어 지배한대요. 이름을 잊으면 돌아갈 길을 잃게 된다는 하쿠의 말에 저는 본명을 적은 종이를 몰래 숨겨놨지요. 여러분도 명심하세요. 내가 누구인지를 잊지 않으면 어떤 어려움도 헤쳐나갈 수 있다는 것을….
친구도 많이 생겼죠. 가마에서 일하는 팔이 여섯 개 달린 할아버지랑 귀여운 숯검댕이들, 웨이터 개구리, 카운터 보는 매기 아저씨….
영화 상세정보 | 동영상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 예고, 예고2, 뮤직비디오, 메이킹 |
어느날 십리 밖에서부터 악취를 풍기는 ‘오물신’이 왔어요. 다들 도망쳤지만 저는 극진히 시중들었죠. 엄마 아빠를 구하기 위해서는 뭐든 열심히 하기로 했으니까요. 그런데 겉만 오물신이었고 알고보니 고귀한 강의 신이었어요. 인간이 버린 쓰레기를 삼키는 바람에 오물신처럼 보였던 거죠. 정말 겉모습만 보고 누군가를 판단해선 안돼요. 우리가 강을 얼마나 더럽히고 있는지도 느꼈답니다.
이제 가장 흥미진진한 친구 얘기를 해야겠군요. 외톨이인 ‘얼굴없는 요괴’지요. 비를 맞으며 밖에 서 있는 게 불쌍해 제가 목욕탕에 살짝 넣어줬거든요. 그런데 그 요괴가 금을 만들어내면서 목욕탕이 발칵 뒤집혔답니다. 어, 시간이 다 됐네요. 그 뒤 얘기가 궁금하시면 저를 만나러 오세요.
일본에서는 이미 2400만명이나 저를 만나고 갔지요. 일본 영화 사상 최고 기록이래요. 이게 다 ‘일본의 디즈니’로 불리는 미야자키 하야오 할아버지 덕분이죠. 한국에서는 어떨지 궁금하네요. 미야자키 할아버지의 걸작 ‘이웃집 토토로’는 비디오로 볼 사람들은 다 봐서 한국 극장에서는 흥행이 잘 안됐다죠?
제 자랑 하나만 더 할게요. 저는 올 베를린 영화제에서 애니메이션으로는 처음으로 황금곰상을 탔답니다. 2시간 20분이 길게 느껴지지 않는 상상력 풍부한 이야기와 삶의 교훈을 담아 흥행성과 작품성을 고루 갖췄다는 칭찬을 들었죠. 28일 이후에 만나요.
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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