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상하이 파크 극장에서 막을 올린 ‘레미제라블’의 중국 공연 제목은 ‘비참세계(非慘世界)’. 현지에서는 ‘중국 상하이판 코제트 탄생’이라는 표현으로 이 작품에 각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중국 언론은 연일 약 5t에 이르는 바리케이트와 회전무대, 1000여벌의 의상 등의 장비 공수과정을 상세하게 보도했고, 공연 한달 전에 총 3만표 중 95%가 예매됐을 정도다.
23일 오후 1시 반. 상하이 시내는 섭씨 30도를 오르내리는 찜통 더위가 기승을 부렸지만 공연장인 그랜드 극장 앞은 장사진을 이뤘다. 1500위안(약 22만원) 상당의 R석을 비롯 평균 800위안(12만원) 짜리 표를 구하려는 관객이 서성거렸고, 값을 흥정하는 암표상도 눈에 띄었다.
‘레미제라블’이 이처럼 사회주의 국가에서 관심을 끄는 이유는 19세기 프랑스 혁명을 어떻게 그렸을까 하는 궁금증을 유발시켰기 때문이다. 부패한 왕정에 맞선 혁명군이 바리케이트에서 전투를 벌이다 전멸하는 장면에서 1800여 관객들은 숨을 죽였다.
특히 장발장이 죄수였던 과거를 숨긴 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후 앰 아이(Who Am I)’, 어린 코제트가 천상의 목소리로 희망을 노래하는 ‘캐슬 온 어 클라우즈(Castle on a Clouds)’ 등 애잔한 발라드 넘버가 끝날 때마다 객석에서는 박수 갈채가 터져나왔다.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이 역사 뮤지컬에서 극 중 테나르디에 부부(J.P. 더퍼티, 에미 가르시아)의 재기발랄한 코믹 연기는 관객의 웃음을 자아냈다. 이들은 장발장에게 코제트를 넘기면서 한푼이라도 더 받기 위해 앙탈을 부리지만 절박한 현실에서 살아남으려는 서민의 모습을 풍자한다.
총 3시간 20분, 2막 27장으로 구성된 ‘레미제라블’은 죄와 벌, 탐욕과 사랑 등이 브로드웨이 1급 배우들의 걸출한 연기와 노래로 어우러져 한층 수준 높은 무대를 선보였다. 공연을 관람한 치안전(錢W)씨는 “책으로 읽었던 작품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서 전율을 느꼈다”며 “비싼 공연료가 아깝지 않을 만큼 예술성이 뛰어났다”고 말했다. 내한공연 문의는 02-518-7343.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장발장 열연 랜달 키스
‘레미제라블’의 죄수에서 백발 노인까지 장발장으로 열연한 랜달 키스(사진)는 강렬한 푸른색 눈매와 묵직한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다. ‘레미제라블’에 600여회 출연한 것을 비롯 ‘오페라의 유령’에서 주요배역인 유령 라울 앙드레를 두루 거친 거의 유일한 배우이기도 하다.
“‘오페라의 유령’은 오락적인 요소가 강해 재미있고, ‘레미제라블’은 진지한 드라마로 매력이 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물론 장발장이다.”
장발장에 대한 평가를 부탁하자 “평생을 바르게 살고자 애쓰면서 어려움을 이겨나가는 인간적인 인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자칫 모든 것을 초월한 성자처럼 비춰질 것같아 자신의 개성을 덧입혀 새로운 장발장을 그리려 애쓰고 있다고 했다. 극중에서 저음과 고음을 넘나드는 탁월한 가창력을 선보인 그는 음악 정규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교회 성가대에 섰던 것이 유일한 경력이다. 노래를 잘하는 비결을 묻자 “목소리는 타고 나는 것이며 평소에 성대 보호에 신경을 쓴다”고 말했다.
그는 1985년 뮤지컬 ‘에비타’로 데뷔해 연극과 뮤지컬만 고집하고 있다. ‘큰돈이 보장되는’ 영화나 TV보다 17년째 살아있는 무대에 선다는 것에 강한 애정을 느낀다.
그는 이번 중국 공연이 “수시로 박수가 터지는 서양에 비해 ‘조용’했지만 작품에 집중하는 관객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며 “이어지는 서울 공연에서 1970년경 펜팔로 사귀었으나 이름을 잃어버린 ‘한국 소녀’도 만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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