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정신 獨步(12)]서화류 문화재 복원1인자 박지선교수

  • 입력 2002년 6월 26일 18시 17분


사진 : 신원건기자
사진 : 신원건기자
국보 111호 고려 안향(1243∼1306) 영정, 국보 126호 무구정광대다라니경, 국보 196호 신라 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 보물 133호 화엄사 서5층석탑 출토 다라니경, 보물 1286호 고려불화 수월관음도…. 국내 서화류 문화재의 최고 명품들은 모두 그의 손 끝에서 새 생명을 얻는다.

훼손 위기에 처한 서화류 문화재 보존처리 및 복원의 1인자인 박지선 정재문화재보존연구소장 겸 용인대 교수(41). 1986년 불모지였던 이 분야에 처음으로 뛰어든 사람이기도 하다.

서화류 문화재 복원은 인내를 요하는 고독한 작업이다. 워낙 품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보존처리는 대개 ‘기본 조사-해체-소독 및 세척-배접지(그림이나 글씨 뒷면에 덧붙이는 종이) 제거-종이 천 짜깁기-배접-표구’ 등의 순서를 거친다. 이 과정은 거의 수작업이다.

특히 종이나 천(비단 등)을 짜깁기하는 과정은 고난도의 작업이다. 원재료와 같은 재질의 종이나 천을 제작해야 하는데다, 벌레 먹어 구멍났거나 오래되어 탈락된 크고 작은 부분을 한올한올 일일이 손으로 짜깁기해 넣어야 한다. 그렇다보니 끈기와 정교함이 모두 필요하다. 시간도 오래 걸린다. 6개월, 1년이 잠깐이다. 보물 1286호 수월관음도의 경우 4년이나 걸렸다. 그는 후배나 제자들에게 “5년 이상 고아가 됐다고 생각하고 버텨야 한다. 고독을 무서워하지 말고 즐겁게 도전하라”고 말하곤 한다.

또한 서화류 보존처리는 극도의 긴장을 요한다. 사소한 실수라도 발생하면 국보나 보물 등의 문화재가 훼손되기 때문이다. 그는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나쁜 생각도 하지 않고 나쁜 것도 보지 않는다. 구도자처럼 마음을 맑게 해야 보존처리를 제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보존 처리는 단순히 훼손을 방지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과학적 분석을 통해 종이나 비단 등의 재질, 각종 안료, 표구 상태 등 등에 관한 새로운 사실을 밝혀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내용은 미술사학자들이 놓치는 내용이지만 박 소장에겐 중요한 연구 테마가 된다. 그는 그래서 “서화류 보존처리는 마치 보물찾기 같다.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는 기쁨이 보통이 아니다”고 말한다.

박 소장은 원래 미술학도였다.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 동양화과 재학시절, 간송미술관의 최완수 연구실장의 강의를 들으면서 서화류의 보존처리 및 복원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대학원을 졸업한 이듬해인 86년 일본으로 건너가 93년까지 교토국립박물관 문화재보존수리소에서 도제식으로 보존과학을 배웠다. 박 소장은 “도제식이다보니 사실은 혼자서 모든 것을 배워나가는 것이었고 그게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고 말한다.

94년 귀국했을 때, 국내 서화류 보존처리 전가는 박 소장 단 한 명뿐이었다. 지금은 전공자들이 늘어났지만 아직도 수준급 전문가는 손꼽을 정도. 힘든데다 크게 돈 버는 일이 아니기 때문일까. 그래도 그는 언제나 즐겁다.

“문화재 명품을 볼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합니다. 문화재 공부하는 사람에게 그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 있겠어요. 그게 보존처리의 진정한 매력입니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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