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기획의 김지연 차장(31). 서른 살이 넘으니 회사에서 ‘대접’이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8년 전 처음 입사한 후 몇 년은 ‘빛나는 시절’이었다. 상사들은 고객사 임원 등 VIP를 만나는 중요한 자리에 늘 그를 데리고 다녔다.
프리젠테이션(PT)을 할 때도 첫 번째로 꼽혔다. 신입 여사원들에게 발표를 시키면 분위기가 부드러워지고 어려운 질문에 잘 대답하지 못해도 쉽게 넘어가는 경향이 있기 때문. 회사는 전략적으로 ‘똘똘한’ 여사원의 PT 참여를 권장하기도 했다.
신입 여사원에게는 ‘혜택’이 많았다. 그가 실수하면 웃어넘기는 상사들이 남자사원들의 같은 실수에는 혹독하게 꾸중하는 모습도 보았다. 때로 남자 동료들이 ‘역(逆)차별’이라며 불만을 터뜨릴 정도였다.
입사한 지 4, 5년이 지나고 후배들이 들어오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김씨에게 오던 기회는 후배에게 돌아갔다. 너그러웠던 상사와 동료들은 김씨가 대리, 과장, 차장으로 승진하면서 점점 엄격해졌다. 어떤 때는 남자 과장, 남자 차장보다 더 ‘가혹한’ 기준을 자신에게 적용한다는 느낌도 받았다.
“처음엔 질투심 같은 것도 느꼈죠. 그러나 물론 나의 경쟁자는 후배 여성이 아닙니다. ‘남자 동료들이 실력을 쌓아 자신의 전공을 찾고 조직에 승부를 걸 때 나는 뭘 했나’ 하는 반성을 했습니다.” 김 차장은 요즘 여자 후배들을 보면 선배로서 그들을 힘껏 도와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두루넷의 박형재 과장(31)은 처음 우성그룹에 입사했을 때 직속 상사로부터 “직장인이 될 거냐, 여자가 될 거냐 선택하라”는 질문을 받았다. 박씨는 “훌륭한 직장인이 되고 싶다”고 답했다. 상사는 밤이고 낮이고 그에게 남자들과 똑같이 호되게 일을 시켰다.
박 과장은 “나이가 들고 결혼하니까 오히려 일하기가 편해졌다”고 한다. 결혼 전에는 주변의 오해가 두려워 하지 못했던 일도 지금은 거침없이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김 차장과 박 과장은 “대졸 여사원들이 적을 때 팀의 홍일점이었던 여성은 스스로를 ‘특별한 존재’로 느끼는 일이 많았다”고 했다. 그러나 경력이 쌓이고 환경이 달라지면 자신의 역할과 비전을 찾지 못하고 그만두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안타까워했다.
비교적 직장에서 ‘잘 나가고 있는’ 두 사람은 “직급이 올라갈수록 엄격한 기준으로 평가받는 것은 남녀가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설사 상황이 더 안 풀린다고 해도 이를 환경 탓으로만 돌리면 자신도 조직도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선배들에 비하면 우리에겐 벌써 많은 ‘신화(神話)’가 있죠. 벽이 있다면 그것을 넘으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부터 돌아봐야겠지요.”신연수기자 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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