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듦’은 생의 지혜를 쌓으며 좀더 충만하게 사는 것 같아 축복이라 여기면서도, ‘늙음’은 생의 어느 정점에서 하염없이 내리막길로 향하는 것 같아 두렵다. 작년 가을 한 어르신을 알아 그분의 삶을 오래도록 들여다보면서 ‘늙음’을 조금씩 긍정하기 시작했다.
그분은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와 ‘호박이 어디 공짜로 굴러옵디까’를 쓰신 전우익 선생님(77)이다. 그분이 7년 동안 짬짬이 장만한 알곡 같은 글을 ‘사람이 뭔데’라는 책으로 만들면서 인연이 되었다. 첫 만남에서 그분의 눈빛, 주름, 자태, 말씨를 눈과 귀에 담으며 난 연리지(連理枝) 되듯 그분의 삶결에 닿았다. 누굴 만나든지 허리 굽혀 정중히 인사하고 존대하시는 모습, 농사짓고 나무 키우는 틈틈이 책 읽고 글 쓰시는 모습, 당신에게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면 나이 상관없이 스승으로 삼는 모습,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홀로 사시는 모습, 각계 각층의 사람과 소박하고 겸손한 정을 주고받는 모습, 구속적인 삶을 오래 사셨어도 심성이 함박꽃처럼 환한 모습…이러한 모습에서 난 ‘싱그러운 늙음’을 느꼈다. 젊음과 늙음을 한 몸에 품은 노거수(老巨樹)를 마주할 때처럼.
쭉정이 하나 없이 충실하기만 한 그분의 글을 읽어본 사람이면 누구든지 흠모하여 한번 만나 얘기를 나누고 싶어한다. ‘사람이 뭔데’가 출간된 뒤에도 훈훈한 독자 반응이 계속되었는데, 담당 편집인으로서 그 훈기를 직접 느꼈던 나날이 참 신나고 뿌듯했다. 지난 정월대보름, 그분이 손수 재배한 곡식으로 조촐한 오곡밥상을 차려 출간을 기념하는 자리에 참 소중한 이들이 많이 다녀갔다. 하나같이 이 시대 귀인(貴人)의 풍모를 눈사진 찍으려는 듯 눈빛이 형형했다. 늘 궁금했던 그분의 많은 정인(情人)을 한자리에서 뵙게 된 그 날, 회사 북카페 ‘세상으로 열린 집’은 연리지 된 나무로 가득한 숲 같았다.
젊음과 늙음을 더불어 지닌 전우익 선생님! 어떤 나이테를 지닌 사람이 읽어도 마음에 의미 하나씩 새길 수 있을 만큼, 그분의 책은 녹슬지 않은 지혜로 가득하다.
송명주 현암사 편집부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