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卷一. 四海는 하나가…(11)

  • 입력 2002년 7월 4일 16시 20분


웅크린 호랑이 ③

“그 일이라면 이젠 저도 어찌해 볼 수 없습니다. 작년 함양(咸陽)에 일꾼 만 명을 낼 때도 이미 젊은이들만으로는 모자라 머리 허연 늙은이들까지 나서지 않았습니까?”

이윽고 마음속의 선을 정한 항량이 먼저 그렇게 운을 떼어 은통의 속을 떠보았다. 은통이 능청을 떨었다.

“나도 알고 있네. 하지만 어쩌겠나? 늙은 이 한 몸 벼슬과 목을 내놓는 일이야 어렵지 않지만, 뒤이어 밀어닥칠 조정의 대군은 또 어떻게 하나? 황제께서는 반드시 우리 회계에 반역의 죄를 물으실 터인즉….”

가장 회계군 사람들을 생각하는 척하면서 하는 위협이었다. 하지만 진나라의 엄한 법령이나 점점 더 자기도취에 깊이 빠져 들어가는 시황제의 가혹한 결정들을 돌이켜 보면, 그저 말로만 해보는 위협은 결코 아니었다. 그 한 예가 그해 온 천하를 흉흉하게 한 책 불사르기[분서] 소동이었다.

옛 제나라 땅 사람인 박사(博士) 순우월(淳于越)이 군현제(郡縣制)에 왕족들끼리 서로를 지켜주는 기능이 없음을 걱정하며, 옛 봉건제(封建制)의 부활을 주장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승상 이사(李斯)가 글로 이렇게 아뢰었다.

<오제(五帝)의 다스림이 서로 중복되지 않고, 하(夏) 상(商) 주(周) 삼대가 서로 이어받음 없이 각자의 방식으로 천하를 다스린 것은 서로를 반대해서가 아니라 시대가 변하여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이제 폐하께서 대업을 창시하시어 만세의 공덕을 세우셨으니, 어리석은 유생들로서는 진실로 그 뜻을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물며 순우월이 말한 것은 삼대(三代)의 일이니 어찌 반드시 본받아야할 일이겠습니까.

  <이문열 신작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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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는 제후들이 서로 다투었으므로 높은 관직과 후한 봉록으로 떠도는 선비들을 불러들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천하가 안정되어 법령이 통일되었으며, 백성들은 집안에서 농공(農工)에 힘쓰고 선비들은 법령과 형률(刑律)을 배우고 있습니다. 다만 유생(儒生)의 무리들만 지금의 것을 배우지 않고 옛 것만을 배워 지금의 세상을 그르다 헐뜯으며 백성들을 미혹되게 하고 있습니다.

이에 승상인 이사는 감히 아뢰옵니다. 옛날에는 천하가 혼란스러워 어느 누구도 천하를 통일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제후들이 서로 군사를 일으키고 하는 말마다 옛것을 내세워 지금을 헐뜯고, 허망한 것을 늘어놓아 실질적인 것을 어지럽혔습니다. 또 저마다 사사로이 배운 것만을 높이 치켜세움으로써 천자의 조정에서 세운 제도를 비난하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황제께서 천하를 통일하시어 흑백을 가리고, 모든 것은 지존(至尊) 한 분에 의해 결정되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사사로이 배운 것으로 조정의 법령과 교화를 비난하고, 법령을 들어도 자신의 학문으로 그 법령을 따질 뿐이며, 조정에 들어와서는 마음 속으로 비난하고, 조정을 나가서는 길거리에서 의논하는 일이 잦습니다. 임금에게 자신을 과시하여 명예를 얻으려 하고, 기이하고 별난 주장을 내세워 자신을 높이려고 하며, 백성들을 모아 조정을 헐뜯고 깎아내리는 말을 퍼뜨리기도 합니다.

만약 이러한 일들을 엄하게 금지하지 않는다면 위에서는 황제의 위세가 떨어지고 아래에서는 붕당(朋黨)이 갈라질 것이니 실로 걱정입니다. 신이 청하옵건대 사관(史官)에게 명하시어 진(秦)의 전적이 아닌 것은 모두 태워 버리게 하시고, 박사관(博士館) 이외의 곳에 있는 시(詩) 서(書) 및 제자백가들의 저서는 지방의 관리들이 모두 모아 태우게 하며, 감히 시와 서를 이야기하는 자는 저잣거리에서 사형에 처하시어 백성들에게 본보기를 보이시고, 옛것으로 지금의 일을 나무라면 그 일족을 모두 죽이시옵소서. 또 이같은 일을 보고도 잡아들이지 않는 관리는 같은 죄로 다스리시고, 명령이 내려진 지 한 달이 지나도 책을 태우지 않은 자는 얼굴에 먹을 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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