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속의 에로티시즘]'프란체스코 비아시아'핸드백 광고

  • 입력 2002년 7월 4일 16시 20분


이탈리아 BBDO사가 만든 핸드백 광고
이탈리아 BBDO사가 만든 핸드백 광고
여자라는 젠더의 아이덴터티를 드러내는 표식은 여성의 성기다. 여성의 성기는 여성의 존재를 규명하는 구멍이다. 그곳으로부터 인간 탄생이라는 실존의 철학이 시작되며, 그 곳을 통해 섹스 산업의 이데올로기가 펼쳐진다. 그곳은 세상으로 열린 문이자 쓰린 세상을 받아들이는 문이기도 하다. 그곳을 통해 인간이란 종의 맥을 잇게 되고 경제력이 없는 여성이 가장 손쉽게 돈을 만지게 된다. 하여 그곳은 평생 아물지 않을 영광의 상처가 될 수도, 부끄럽지 않은 치욕의 상처가 될 수도 있다.

객관적 형상으로 볼 때 여성의 성기는 아름답다기보다는 그로테스크하다고 할 수 있다. 어원적으로 볼 때도 그로테스크는 여성 성기의 특성과 관계가 있다. 동굴의 의미를 갖는 ‘그로테(grotte)’라는 이탈리아어로부터 그로테스크란 말이 유래했는데 ‘동굴같이(grotto-esque)’ 깊고 어두운 지형적 특성이 여성의 성기를 나타내는 메타포로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남자에게 어둡고 내밀하고 비의적인 그곳은 끝이 보이지 않는 판타지의 세계이다. 수많은 도색 잡지들이 여성의 성기를 해부학적으로 드러내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것도 판타지의 충족을 위한 것이다. 늘 제기되는 페미니스트의 지적처럼 여성의 몸이란 남성적 환상에 의해 식민화된 신체인지도 모른다.

이탈리아 밀라노의 광고제작사 BBDO가 만든 ‘프란체스코 비아시아(Francesco Biasia)’란 핸드백 광고는 열린 지퍼 사이로 드러난 안감의 재질과 주름진 모습을 통해 여성의 성기를 형상화했다. 밀라노에서 곧 상점을 열게 된다는 사실을 고지하기 위한 이 광고는 당연히 핸드백의 지퍼가 열리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냈음직 하다. 그런데 그 모습을 여성의 성기와 결부시킨 상상력이 엉뚱하면서도 탁월하다. 실제의 모습으로 착각할 정도로 성기의 형상을 세밀하게 포착해낸 아트워크는 예사 솜씨가 아니다. 깊은 동굴의 문이 열리듯, 비의의 축제가 시작되듯 핸드백의 지퍼가 열리고 있다. 마치 핍쇼(pip show)를 보는 듯한 느낌. 이 광고는 최근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제2회 리스본 에로틱 광고제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영국 런던의 사치&사치(Saatchi & Saatchi)에서 제작한 에로틱숍 ‘코코드메르(Co Co de Mer)’ 광고는 양배추를 통해 여성의 성기를 형상화했다. ‘부엌에서의 판타지(kitchen fantasies)’란 카피가 첨부된 이 광고는 양배추의 잘린 단면에서 여성의 성기 형상을 추출해내는 에로틱한 상상력을 선보인다. 양배추에서 성기의 형상을 발견해내다! 카피가 드러내듯 그것은 성적 판타지다. 코코드메르의 앞 두 글자 ‘CoCo’를 맞붙여 놓은 것 같은 로고 역시 여성의 성기를 형상화하고 있다.

영국 사치&사치사가 만든 에로틱숍 '코코드메르' 광고

이 두 편의 광고는 합법적인 포르노이다. 포르노 광고이다. 실체를 보여 줄 수 없으니 메타포를 빌려 왔을 뿐이다. 그러나 이 두 광고는 우리가 얼핏 생각할 수 없었던 사물로부터 성기의 이미지를 차용했다는 데서 비주얼 상상력의 독특함이 엿보인다. 성을 예술적으로 상품화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성적 판타지는 우리 일상에 널려 있다. 솟아 있는 것이면 남근에, 움푹 파인 것이면 모두 음부에 갖다 붙인다. 그 어떤 형태의 사물이라도 양과 음의 속성을 띤 것이라면 우리는 제일 먼저 성적 환상으로 치환해버린다. 가장 드러내길 꺼리면서도 왜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일까? 은밀하고 내면적일수록 까발리고 싶은 욕망은 더 크기 때문이다. 꼭꼭 숨겨진 여성의 성기를 찬란하게 드러내려는 도색잡지의 강박은 얼마나 치열한가!

김 홍 탁 광고평론가·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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