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양의 대인관계성공학]잔치는 끝났지만…

  • 입력 2002년 7월 4일 16시 20분


어느 시인의 표현처럼 ‘잔치는 끝났다’. 시작할 때만 해도 남좋은 일이나 시키고, 그저 그런 시시한 판으로 끝날 것 같던 월드컵이었다. 하지만 우린 그걸 진짜 신명나는 잔치판으로 만들고 말았다. 환희와 격정, 순수와 열광 그리고 엄청난 힘으로 용솟음치는 카타르시스-우리는 모두 하나가 되어 그걸 체험했다. 아마 당분간은 그 어디서도 그렇게 폭포처럼 쏟아지는 어마어마한 감정의 격동은 경험하지 못할 것이다.

축제는 일종의 정신적 퇴행이다. 어른에서 어린아이로 돌아가는 과정, 어른으로서 우리는 끔찍한 의무감으로 수많은 스트레스를 견뎌낸다. 그리고 누구나 스트레스가 가득 차면 어떤 방법으로든 그걸 해소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기 마련이다. 과음을 일삼거나 폭식을 하거나 미친 듯이 게임에 빠지거나 하는 식이다. 개중에는 만화에 폭 빠져 살거나 아이들용 인형이나 장난감을 모으거나 갖고 논다는 사람들도 있다. 무의식적으로 어린아이로 퇴행하는 것이다.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던 어린시절, 그다지 책임질 일도 없고 의무감 느낄 일도 없고 그저 신나게 놀기만 해도 누구도 뭐라 하지 않던, 거리낌없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욕망, 거기서부터 퇴행의 과정은 시작된다.

축제는 그 퇴행의 욕망을 사회적으로 승화시키는 가장 훌륭한 장치의 하나이다. 남미의 카니발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들은 몇날 며칠을 정해 미친듯이 카니발에 빠져들고, 그것으로 자신들의 퇴행욕구를 만족시킨 다음, 마음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고 재빨리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에겐 그런 축제다운 축제가 없었다. 있었다 해도 누구나 다 참여하는 신명나는 잔치마당은 아니었다. 그런데 우리는 이번 월드컵 기간 동안 마침내 그걸 경험했다. 마음 속에 가득차 있던 억압을 벗어던지고 마음껏 퇴행하고 싶은 욕구를 신명나게 풀어헤치면서 그것을 더할 수 없이 멋있게 승화한 것이다.

덕분에 우리도 건강한 사회적 성숙의 한 지표를 갖게 된 것도 자부심을 느낄 만한 일이다.

문제는 잔치가 끝난 뒤이다. 계속해서 퇴행상태에 머무를 수는 없는 법, 어른으로서 적당한 긴장과 이완이 필요한 일상으로 돌아와야 하는 것이다. 한 가지 다행한 것은, 신명이 넘쳐났던 잔치여서 그랬는지, 잔치 뒤의 허무감조차 달콤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뭐랄까, 아주 단순하고 깨끗하게 비워진 마음으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겠다는 마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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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창순 신경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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