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 권위가 단순히 신문의 권위에 기대 이뤄진 것만은 아니다.
예컨대 창간 100주년을 기념해 뉴욕타임스 북리뷰는 ‘세기의 책들’이란 책을 펴냈는데, 잘못 평가한 서평까지도 숨김없이 게재해 눈길을 끌었다. 뉴욕타임스 북리뷰가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J.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이 출간되기 하루 전인 1951년 7월 15일, 제임스 스턴의 서평을 게재한 일이었다.
단편작가였던 제임스 스턴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말을 반복하다가 결국에는 “샐린저란 사람은 단편이나 써야할 치다. 애들 얘기를 어떻게 쓰는지도 잘 안다. 하지만 이 책은 너무 길다. 지루한 감이 든다”라고 썼다. 덕분에 제임스 스턴은 전세계 샐린저 팬들에게는 잊히지 않는 이름이 됐다.
이처럼 뉴욕타임스 북리뷰가 실수에 솔직하다고 해서 그 전통이 사라질리는 만무하다.
한편으로는 어떤 권력에도 자유로움을 잃지 않는 일이 필요하다. TLS도 창간 100주년을 맞이해 비평의 시대라는 뜻도 함축한 ‘결정적 시대’라는 책을 펴냈다. TLS의 역사를 추적한 이 책에는 TLS의 명성 때문에 되려 더 타임스의 문예면이 약해진다고 생각한 사주 노쓰클리프에 맞서 TLS를 지켜낸 초기 편집장 브루스 리치몬드의 활약이 나온다.
이를 두고 이브닝 스탠다드는 “루퍼트 머독도 TLS를 소유했지만, TLS의 생명력만은 소유할 수 없었다. 그 생명력은 편집자에게도, 기고자에게도 속하지 않고 다만 독자들에게만 뻗어나갈 뿐”이라고 표현했다.
한국에서도 이광수의 ‘무정’을 다룬 서평지가 여전히 출간된다면 어떨까? 이상의 ‘오감도’를 혹평했다가 47년이 지난 뒤, 그 실수를 인정하는 서평지가 있다면? 종로서적도 문을 닫는 판국에 이건 몽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나마 가장 오래된 서평지라면 15년 전통의 ‘출판저널’이 있는데, 이마저도 존폐의 위기에 놓인 판국이다.
우리 서평 문화의 연치가 겨우 15년을 넘기지 못한다는 사실이 갑갑하기만 하다. 어쩌면 우리의 문화란 팔을 뻗을래야 뻗을 공간이 없고 어깨를 딛어 올라설래야 난쟁이들뿐인 곳인지도 모르겠다.
김연수 소설가 larvatus@ne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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