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월드컵 참가 잉글랜드팀 훈련 캠프를 유치했던 효고(兵庫)현 아와지(淡路)섬 ‘쓰나초(津名町)’는 월드컵 특수 후속행사를 착착 진행 중이다. 우선 일본 기와의 명산지답게 캠프 기념비의 하나로 먼저 토기(土器) 축구공을 만들었다. 축구광 기와장(匠)이 지름 60㎝ 축구공을 꿰맨 바늘자국까지 치밀하게 재현했다 한다.
또 현장에 잉글랜드 선수 베컴과 오언의 동상을 세울 계획도 마련했다. 벌써부터 슈퍼 스타들을 연모하는 여성 팬들의 발길이 줄을 잇는다는 소식이고 이를 놓칠 세라 캠프장과 숙소를 둘러보는 관광상품도 개발되었다.
월드컵을 계기로 ‘쓰나 마을’이 명소로 거듭 태어난 것은 결코 우발적인 일이 아니다. 사전에 치밀하게 계산된 마을 발전책의 일환이었다. 작년 6월 캠프장으로 공인받자 영국축구협회가 사용 신청을 해왔다. 아와지섬이 오사카와 시고쿠(四國) 사이 나루토(鳴門)해협에 위치한 까닭에 간사이 국제공항과 가까운데다, 섬이라서 선수관리가 용이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 한다. 이 상황에 쓰나는 즉각 반응한다. 주민 대표가 직접 잉글랜드로 날아가 ‘영국선수들이 일본 훈련 캠프에 들면 현지 주민들과 어울리자’고 미리 청한다.
일주일간 우리나라 서귀포 캠프에 먼저 묵은 뒤 5월 26일에 현지에 도착한 잉글랜드팀은 교류보다 훈련이 중요하다며 견학 기회를 갖자는 마을의 요청을 거절하고 나선다. 팀은 캠프장 주변을 3m 높이 막으로 감싼 뒤 비밀훈련에 들어간다. 덕분에 특수를 누린 곳은 캠프 주변 광학가게들. 일본 축구팬들은 연습 광경을 500m 떨어진 곳에서나마 바라보자면 50배율의 쌍안경이, 흔들림 방지 장치가 붙은 것은 50만원대임에도 너도나도 사들였다.
또 쓰나 인근의 ‘아와지 팜파크(Farm Park)’도 잉글랜드 특수를 누린다. 도시 사람을 상대로 소시지 등도 만들어 볼 수 있는 농축(農畜)체험을 파는, ‘자연 회귀’가 주제인 테마파크인데 호주식 풍광을 더해 ‘잉글랜드의 언덕’이 조성되어 있었음도 가세한 효과다.
쓰나의 관광 진흥은 특이한 전력(前歷)을 자랑한다. 1988년에 다케시타(竹下) 정권은 지방 스스로 고장 번영을 생각해 실행한다는 것을 조건으로 전국 3000여 지방자치 단체에다 현금 1억엔씩을 주는 ‘고향창생(故鄕創生) 사업’을 벌였다. 고장을 개성적으로 꾸미도록 지방 재량에 일임한 것이다.
지방마다 독창적인 방안을 찾는다며 기발한 아이디어가 백출(百出)했다. 아이디어 찾기가 어디 쉬운가. 좋은 아이디어를 실행하자면 돈이 더 필요하다며 도쿄에 가서 복권을 사야겠다는 지방도 있었다.
당시 마땅한 방안을 찾지 못한 쓰나는 방안이 나올 때까지 원금이나마 잘 지키자며 1억엔어치 62.696㎏ 금괴를 사서 마을 공원에다 전시했다. 그러자 뜻밖에도 ‘1억엔짜리 금괴가 얼마나 크겠는가’, 궁금해 하는 사람이 생겨나고 그걸 구경하려는 외지인들이 계속 늘어난다. 자연스럽게 호기심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 여관, 식당 등이 생겨나면서 관광산업이 진흥되는 해프닝을 누린다.
이번에 잉글랜드 선수들 훈련장 경호 등에 돈이 너무 많이 든다며 금괴를 팔자는 의견도 나왔다. 주민들 반응이 찬반양론으로 들끓었다. 기성세대는 절대불가라 하고, 신세대는 모처럼 신나는 기회이니 팔아도 좋다는 의견으로 갈렸다. 나중에 듣고 보니, 잉글랜드팀에 대한 주목 끌기용 쓰나의 언론플레이였다는 것.
쓰나가 말해 주는 고장 발전책 교훈은 무엇인가. 튀는 아이디어를 통해 성과가 가시화되면 확대 재생산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노력 속에는 여론조작성 홍보도 포함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번 월드컵 때, 쓰나와 유사한 우리 쪽 시도로는 경남 남해군이 돋보였다. 환경농업과 스포츠 캠프시설을 고장의 관광 상품으로 내세우려는 시도의 전초로 세계적 낙농국 덴마크팀 유치에 성공했다. 우리나라에 설치된 외국팀 캠프장이 모두 도시 인근인데, 오직 남해만 농어촌이었다. 그러나 팀이 떠난 뒤 남해군 행사는 기념식수가 고작이었다. 시작은 좋았는데 끝이 흐지부지했다.
정부는 또 어떤가. 우리가 4강에 들지 못했더라도 개최국이란 사실이 국가 이미지 제고에 막대한 효과가 예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뒤늦게서야 월드컵 효과 거두기를 서둘고 있다. 정부의 기동력은 물먹은 솜처럼 무겁기만 하다. 4강에 들자 여러 지방이 다투어 ‘히딩크 브랜드’를 활용하려고 나선다. “비슷한 것은 가짜”라 했는데도 서로 복사판만 만들까 염려스럽다.
김형국 서울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