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동 한그릇’은 색바랜 사진첩 같은 책이다. 힘들었지만 서로의 어깨를 다독였던 시절을 되돌아보게 한다. ‘그 땐 이랬었지’하는 아련한 그리움과 내 주위 사람들을 다시금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추위가 몰아치는 섣달 그믐밤. 한 음식점에 두 아들과 함께 들어온 어머니는 우동 한그릇을 시킨다. 해마다 세식구의 우동 한그릇 나누기는 되풀이되고 가게주인은 이들을 위해 우동 사리를 넉넉하게 넣어준다. 그러던 어느 그믐날부터 이들 모자는 나타나지 않고….
책 제목과 같은 ‘우동 한그릇’과 임종을 앞둔 어머니의 소망을 들어 주기 위해 먼길을 달려온 ‘마지막 손님’ 등 2편의 소설을 수록한 이 책은 1989년 7월 초판이 나온 뒤 지금까지 57만부가 넘게 팔렸다. 요즘도 한달 평균 1만부 정도씩 꾸준히 팔리고 있다.
‘우동…’은 ‘일본 국회를 울린 책’으로 화제가 됐지만 발매 초기에는 큰 반응을 얻지 못했다. 제목만 보고 일본 음식을 소개한 책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사태 직후 이 책에 대한 관심이 증폭됐다. 사회 전반에 정리 해고, 가정 파괴 등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우동…’의 따뜻한 인간애가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얻었다. 책 발매 10년이 넘은 1999년말부터 3개월간 교보문고 외국 소설 부문 1위를 차지하는 이색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방송작가 최정훈씨(25)는 “이 책을 읽으면서 따뜻하고 깊은 맛을 가진 우동 국물처럼 눈물샘을 자극하는 진한 감동을 느꼈다”고 소감을 밝혔다.
‘우동…’은 인생이란 작은 정성으로 큰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교훈을 전한다. 국어 교과서에 실려있던 김소운의 수필 ‘가난한 날의 행복’에서 돈이 없어 미처 반찬을 구하지 못한 남편이 아내에게 쓴 편지도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왕후(王侯)의 밥, 걸인(乞人)의 찬…. 이걸로 우선 시장기만 속여 두오.”
황태훈기자 beetlez@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