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원들이 직접 남긴 사료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특수한 상황 때문이겠지요. 전투원 입장에서 묘사하는 전쟁사가 나오기 힘든 이유이기도 합니다.
전쟁사도 역시 영미권이 탁월합니다. 이번 주에 소개한 ‘아나바시스’를 비롯해 잘 아시는 ‘필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전쟁사의 고전입니다. 그리스 내전이라고 할 수 있는 아테네 스파르타간 기원전 전쟁에 참여한 역사가 투키디데스가 전쟁이 터지자 마자 역사상 최대의 전쟁이 될 것임을 예상하고 직접 장군으로 참전해 세세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기간(27년)이 길었던 만큼 분량도 방대한 이 책은 전쟁기록이라기 보다 고대 그리스를 둘러싼 국제 정세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살아있는 역사서입니다. 각 도시들의 정치 외교 경제상황, 군사작전을 비롯해 연설문들까지 수록돼있고 위기와 결단의 순간을 맞은 인간심리의 생생한 묘사가 압권입니다.
1815년 워털루 전투 등을 분석한 존 키건의 ‘전투의 면모’나 고대 그리스 문헌을 토대로 핸슨이 쓴 ‘서구의 전쟁방식-고대 그리스의 보병전투’ 같은 책들도 고전으로 꼽힙니다. 핸슨의 책에는 한여름 뙤약볕에 달궈진 40㎏짜리 갑주와 방패를 몸에 걸치고 500m를 전속력으로 뛰어가 적 제1열과 충돌해야 했던 그리스의 보통 시민이 느낀 공포감을 생생히 복원되어 있습니다. 시오노 나나미는 ‘네가 전장에 섰을 때 과연 그렇게 재미있을 수 있겠느냐’고 묻습니다. 과거의 전쟁을 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런 질문이라고 하면서 말이지요.
고조선부터 6·25까지 우리나라는 전쟁 없이는 역사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한 전쟁 체험을 갖고 있습니다. ‘한민족 전쟁사’나 ‘6·25전쟁사’ 같은 제목이 책들이 없지는 않지만 전사(戰史) 교과서같은 딱딱한 편집과 건조하고 한문투인 문체가 대부분이이서 대중적인 책이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나머지는 육군사관학교 교재 정도로 쓰이는 전쟁사가 고작입니다.
이해가 안되는 바는 아닙니다. 늘 당하는 입장에서 승전의 체험이 없는 데다 부모 형제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눴던 세계 역사상 드물게 처참했던 내전의 체험이 아직도 육성으로 전해오는 상태에서 전쟁을 남이야기처럼 할 수 없었기 때문이겠지요. 하물며, 현재 진행형의 전쟁 공포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말이지요.
왜 이렇게 되었는가를 따지는 것은 저의 몫이 아닙니다. 다만, 이념과 감정을 걷어 낸 생생한 전쟁사, 시오노 나나미와 같은 냉철하고 객관적인 역사인식을 기반으로 한 전쟁사들이 나올 때 우리 문화와 정신의 지평은 그만큼 넓어지리라는 기대로 이번주 1면을 전쟁사로 꾸며 보았습니다.
늦었지만, 2차 서해교전으로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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