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다가 우리 정치 지도자들은 북한군과의 충돌이 자신들이 추구하는 유화 정책에 방해가 된다는 생각에서 위험한 상황에서 군대가 할 수 있는 행동에 엄격한 제약을 가했다.
군인들은 적과 부딪치면 여러 요소들을 고려해 판단을 내릴 시간적 여유가 없다. 반사적으로 총을 쏘아야 할 때 생각에 잠기면, 그 군인은 죽는다. 그리고 죽은 군인은 나라를 지킬 수 없다.
요즈음 우리 군대의 지휘관들은 북한군이 도발하면 되도록 싸우지 않고 상황을 끝내려고 애쓴다. 그리고 그런 행동이 확전으로 치닫는 것을 막았다고 자랑스럽게 설명한다. 이제 우리 군대 지휘관들은 군인들이 아니라 정치인들이나 외교관들처럼 행동한다.
얼마 전에 우리 해양 경찰관들이 우리 해역에서 불법 조업을 하는 중국 어선들을 단속하려고 중국 배에 올랐다가 오히려 중국 선원들에게 폭행을 당하고 바다에 뛰어들어 도망친 희비극이 있었다. 그 사건도 본질에선 이번 2차 서해 교전과 성격이 같다. 우리 해양 경찰관들도 위험한 상황에서 경찰관들이 아니라 정치인들이나 외교관들처럼 행동한 것이다.
이런 참담한 상황에 대한 책임을 정치 지도자들에게만 물을 수는 없다. 대북한 유화 정책이나 우리 군대에 대한 비상식적 제약은 시민들이 국방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만 가능했기 때문이다.
군대는 사회와 동떨어진 ‘섬’이 아니다. 군대는 사회로부터 자금과 인력을 공급받아 존속하며 시민들의 국방과 군대에 대한 태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근년에 우리 사회에서 국방과 군인의 위상은 아주 낮아졌다.
그리고 반 세기가 채 지나지 않았지만, 6.25 전쟁은 잊혀진 전쟁이 되었다. 나라가 거의 다 무너졌었고, 시민들의 삶을 거의 다 파괴한 재앙이었고, 아직도 기술적으로는 휴전 협정에 의지하는 상태인데도, 그 전쟁을 잊고 군대를 존중하지 않는 사회는 과연 얼마나 건강할 수 있는가?
이런 비정상적 상태는 물론, 여러 가지 징후들로 나타난다.
우리 사회에서 전사(戰史)가 거의 쓰여지지 않고 전사를 찾는 독자들도 드물다는 사실은 잘 언급되지 않지만, 그런 비정상적 상태를 가리키는 징후들 가운데 하나다.
일반 독자들이 어지간한 서점들에서 우리 나라의 전사를 구하기는 어렵다. 6.25 전쟁 말고도, 우리 역사엔 고구려가 수나라나 당나라와 벌인 전쟁, 고려가 거란 몽골 홍건적과 벌인 전쟁, 고려 말기와 조선 초기 왜구와의 치열한 싸움, 임진왜란, 그리고 병자호란과 같은 큰 전쟁들이 많았다. 임진왜란을 빼 놓고는, 그런 큰 전쟁들에 대한 저술은 거의 없는 형편이고, 더러 쓰여져도 소략하고 고증이 부족해 전황을 자세히 알기 어렵다.
6.25 전쟁에 관한 전사도 사정이 비슷해서, 독자들이 읽을 만한 ‘6.25 전쟁사‘는 구하기 어렵고, 상세한 내용을 얻으려면 외국인들의 저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출판계에서 전사의 저술이 작은 산업을 이룬다는 영국에 견줄 수는 없겠지만, 이런 사정은 어느 모로 보나 비정상적이다.
그러다보니, 6.25 전쟁을 실제로 겪지 않은 세대들에겐 그 전쟁은 풍문 속의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 예컨대 1차 대전의 갈리폴리 철수 작전과 2차 대전의 던커크 철수 작전과 함께 성공적 해상 철수 작전으로 꼽히는 ‘흥남 철수 작전’에 관해 아는 이들은 드물다.
흥남 철수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굳세어라 금순아’로 상징되는 피난민 수송을 떠올릴 뿐, 참패의 상황 속에서 뜻밖의 승리를 건진 그 작전의 의의는 모른 채 넘어간다.
일반 시민들이 자기 나라가 겪은 전쟁들에 관한 전사들을 수월하게 구해서 읽을 수 있는 것은 어느 사회에서나 중요하다. 한 사회의 본질은 전쟁과 같은 위기에서 가장 또렷이 극적으로 드러나고, 그런 전쟁의 원인과 경과를 밝혀주는 전사는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중요한 교훈들을 늘 일깨워준다.
전사가 쓰여지지 않는 사회인 우리 나라에서 6.25 전쟁이 잊혀진 전쟁이 된 것은 필연적이다. 그리고 자신을 거의 파멸로 몰았던 그 전쟁을 잊은 사회에선 2차 서해교전과 같은 비극이 거듭 일어날 수밖에 없다.
복거일 소설가·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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