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스님의 山寺이야기]②‘예비군 스님’엔 포복-행군도 수행

  • 입력 2002년 7월 12일 18시 42분


학인 스님이 예비군 훈련을 앞두고 승복 대신 입을 예비군복을 손질하고 있다 [사진제공=현진스님]
학인 스님이 예비군 훈련을 앞두고 승복 대신 입을 예비군복을 손질하고 있다 [사진제공=현진스님]
수련회 일을 도와주는 세 분 스님이 예비군 훈련을 간단다. 저녁나절 예비군복과 군화를 챙기는 것을 봤는데 피식 웃음이 먼저 나온다. 까까머리에 군복을 입은 모습은 상상만 해도 절로 우스워진다. 내일 승복대신 훈련복을 입는 스님은 이제 막 출가한 젊은 스님이다.

병역과 국방의 의무는 산사에서도 이렇게 존재한다. 출가한 수행자일지라도 특혜와 예외는 없는 셈이다. 스님들도 이 땅의 남아로 나라 지키는 신성한 의무를 다한다고 힘주어 말할 수 있다. 스님들이 군대에 간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아스럽다는 표정을 짓는다. 스님들에게도 꼬박꼬박 예비군 훈련 통지서가 배달된다는 사실을 알리 없으니까 그럴 만도 하다. 아마도 출가 수행자에게 병역 특혜를 준다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눈치 빠른 젊은이들은 병역의 의무를 면제받기 위해 ‘위장 출가’를 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실 스님들이 예비군 훈련을 받는 일은 좀 멋쩍은 일이긴 하다. 한마디로 수행자로서의 체통이 말이 아니다. 구령에 맞추어 제식훈련도 하여야 하고 교관의 한마디에 포복도 군말 없이 해야 한다. 무더운 여름 날 ‘선착순 집합’ 기합이라도 한번 당하고 나면 체면 유지가 될 수 없다. 상상만 해도….

그래서 어쩌다 비 오는 날 실내에서 받는 ‘정신교육’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그러고 보면 군대에서는 불법보다 군법이 확실히 세다.

해인사 스님들이 예비군 훈련을 가는 날은 재미가 있다. 훈련이 있는 날이면 산중 스님의 절반 정도가 빠져나간다. 제대하던 계급장을 달고 예비역 군인이 되는 날이기도 한데 가끔 스님들과 함께 수습생 격인 행자(行者)님도 훈련에 참여하기도 한다. 그래서 훈련이 있는 날은 나이 든 스님들이 절을 지킨다. 또한 해인사는 스님들이 무척 많이 살기 때문에 예비군만 모아도 일개 소대(小隊)를 형성한다. 이런 까닭으로 해인사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스님들로 구성된 ‘예비군 소대’가 존재한다. 물론 소대장도 스님이 맡는다. 10년 전쯤 소대장을 상병 계급 출신의 스님이 맡았는데, 스님들이 우스개 말로 ‘방위’ 출신이 소대장이 되었다고 가문의 영광이라고 추겨 세운 일도 있다.

지금은 예비군 훈련에 참여하는 스님들의 규모가 줄기도 했지만 한때 해인사에서는 ‘밥 차’가 뒤따랐다. 수행하는 스님들이 고깃국 섞인 군대밥을 먹어서는 안 된다는 뜻에서다. 일손을 덜기 위해 이제는 도시락을 싸주는 시대로 바뀌었으니 해인사의 예비군 훈련 풍속도도 세월과 함께 달라지고 있다.

훈련장에 가보면 사격 솜씨는 언제나 스님들이 앞선다. 화두에 집중하는 그 힘이 목표물을 향하는 힘으로 전환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공부의 법칙은 어떤 일에서건 똑 같이 적용된다. 스님들에겐 훈련장은 또다른 수행의 현장이기도 하다.

이를 두고 선가에서는 수처작주(隨處作主·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라)라 하던가.

해인사 포교국장·budda122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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