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박인수 사건의 1심 담당 고 권순영 판사의 아들되는 사람입니다.
먼저 김홍탁님이 언급하신 ‘박인수 사건’(55년)은 ‘성폭력 사건’이 아닌 ‘혼인빙자 간음’과 ‘공문서 부정행사’에 대한 건으로 성폭력이나 강간과는 거리가 있는 재판으로 기억합니다.
재판 과정에서 박인수는 70명이 넘는 여자와 춤을 추다가 만나서 양자의 합의에 의해 수십회씩 서로의 쾌락을 위하여 성교를 하였으며(강간이 아닌 화간) 그 중 ‘처녀’는 한 명만 존재했음을 밝혔다고 합니다. 1950년대가 아닌 지금이라면 아무 문제가 될 사항은 아니겠으나 6·25 후 문란해진 성도덕에 따가운 경종을 울려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던 시기였습니다. 그럼에도 국가의 공권력이 개인간의 은밀하고도 침범되지 않아야 할 성생활에 개입해서는 아니 되고 개입하더라도 그것은 최소한에 그쳐야 함이 옳다는 것이 선친의 생각이었던 것으로 사료되는군요.
현재는 정조라는 말도 잘 사용되지 않고 ‘성의 자기결정권’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던데 본인의 자유의지에 의해 성행위를 하였을 경우에는 미성년자이거나 매춘이 아닌 경우에는 처벌치 않는 것이 현재의 조류입니다.
판사는 ‘판결문’으로 말하고 광고인은 ‘광고 카피’로 말을 하겠지요? 의사인 저는 ‘진단명’으로 말을 합니다.
고인은 그 당시 ‘때려 죽일 놈’이던 박인수에게 ‘혼인 빙자 간음’부분에는무죄,‘공문서행사’부분에는 유죄판결을 내렸지요.
포퓰리즘에 묻혀서 유죄 판결을 내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인은 박인수가 도덕적인 죄(sin)를 저지른 것일지언정 법률적인 범죄(crime)를 저지른 것은 아니라고 보았던 것 같습니다. 도덕적인 단죄는 종교나 윤리의 이름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윤리적으로 돌을 던질 수는 있어도 법률적으로 ‘혼빙간’으로 죄를 엮어 넣을 수는 없다는 뜻이었던 것 같군요.
지금은 저세상으로 가신 지도 오래 되어 이를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는 재판정을 나서며 기자들에게 “정조라고 하여 다 법이 보호하는 것은 아니다. 이상에 비추어 가치가 있고 보호할 사회적 이익이 있을 때 한하여 법은 그 정조를 보호하는 것이다”라고 소감을 말했습니다.
자기의사로 성행위를 한 뒤 남자가 결혼해 주지 않는다고 ‘혼인을 빙자한 간음’으로 처벌하는 ‘선진국’은 없습니다. 고인은 그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 아니라 ‘성의 자기결정권’에는 책임이 따라야 하고 그에 대해서는 법률이라는 공권력이 개입할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 같습니다. 그를 통해 박인수와 함께 성의 쾌락을 즐긴 여성들에게 ‘성의 자기 결정’에 따른 책임감을 물은 것 아닐까요?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법학도나 법조인 사이에서 고인의 판결은 ‘시대를 앞서간 명판결’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그는 ‘보수’가 아닌 ‘진보적’인 혜안을 지닌 판사였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권용갑 49·의사·전북 군산시 나운 2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