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강원 양양군 낙산해수욕장. 저녁 어둠이 내리자 백사장 곳곳에서 폭죽이 터지기 시작한다. 바다 위 칠흑같은 어둠 속으로 솟아올라 순간 화려한 꽃이 되어 사라지는 불빛은 처음에는 무척 아름답게 보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삐이익∼ 펑.” “딱 딱 딱 딱….”
긴 백사장 곳곳에서 울리는 폭죽소리와 자욱한 연기는 곧 M16 소총과 60㎜ 박격포를 함께 쏘아대는 사격장을 방불케 한다.
이곳뿐만 아니라 전국의 주요 해수욕장에서 매일 밤 똑같이 벌어지는 현상이다. 》
밤 9시쯤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 폭죽놀이는 자정을 지나도 그칠 줄을 모른다. 이튿날 오전 2시를 넘으면서 간신히 한고비를 넘기지만 수평선 위로 동이 터오는 오전 5시까지도 폭죽소리는 간헐적으로 이어져서 쉽게 잠을 이룰 수 없다.
백사장에는 100∼200m 정도의 간격으로 폭죽 상인들이 판을 벌이고 있다. 꽤 쓸 만한 폭죽의 가격은 5000∼1만원. 그러나 폭죽을 하나 사고 마는 휴양객은 거의 없다. 주저주저 처음 한 발 쏘고나면 미진해서 두발 세발 더 사게되는 것이 폭죽을 쏘는 사람들의 심리다. 또 누군가 폭죽을 쏘고 있으면 구경하던 주변 사람들도 모여들어 덩달아 폭죽을 사게 된다. 백사장은 그렇게 해서 매일밤 거대한 폭죽놀이터로 변한다.
폭죽 상인은 대부분 20, 30대의 힘깨나 쓸 것 같은 청년들이다. 이날도 양양군청 직원들로 구성된 소위 ‘질서계도원’들이 순찰을 돌면서 상인들을 백사장에서 쫓아내보려 하지만 허사다. “이거 왜 이래. 누구 물건인데 함부로 손을 대. 너네만 밥 먹고 우리는 물만 먹고 살란 말이야”라며 폭죽 상인들이 오히려 큰소리를 친다. 질서계도원들은 한동안 실랑이를 벌이다가 결국 어떻게 해보지 못하고 스스로 물러나고 만다. 말로 해서 안되니까 간혹 20만∼100만원에 달하는 과태료를 부과하겠다고 협박(?)해 보기도 하지만 별 소용이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상인들은 주거가 불분명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과태료는 체납되기가 일쑤고 제재수단으로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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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죽 장사에 몰리는 건 쉽게 돈을 벌 수 있어서다. 1만원짜리 폭죽의 유통경로를 추적해본 적이 있는 한 질서계도원에 따르면 폭죽은 대개 중국에서 밀수된 것인데 1만원에 팔리는 폭죽의 원가는 겨우 700원 정도다. 이것이 중간유통 단계를 거쳐 폭죽 상인들의 손에는 약 3000원에 들어온다. 폭죽 하나에 7000원 정도가 남는 장사다. 하룻밤 100개만 팔아도 70만원의 순이익이 생긴다.
상인 한 사람이 하룻밤 100개를 파는 것은 일도 아니다. 방학이 시작된 후 첫 일요일인 21일 낙산해수욕장에는 올 들어 최고 인파인 4만8000명이 몰렸다. 작년 낙산해수욕장의 최고 인파는 8월4일 23만8100명. 올해 인파는 작년보다 40%가량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구간에 터널이 뚫리고 중앙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서울 경기 번호판을 단 차량뿐만 아니라 호남 영남 번호판을 단 차량도 크게 늘었다. 특히 7월말에서 8월초에는 인파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예상대로라면 주말인 27∼28일, 8월 3∼4일에는 하루 25만명 이상의 인파가 이곳을 찾을 것이다. 4만8000명이 찾았을 때 행상 한 사람당 수백개를 거뜬히 팔아치웠다면 25만명이 찾는 날에는 도대체 하룻밤에 몇 개나 팔게 될까.
폭죽 상인은 백사장 바깥에서 판을 치고 있는 무허가 포장마차 세력과도 내밀히 연계돼 있다. 작년부터 2년째 낙산해수욕장 관리를 맡고 있는 박상민 낙산도립공원 관리사무소장은 “무허가 포장마차 주인들은 단속하려 들면 불화로를 집어던지고 쇠파이프나 회칼까지 휘두르며 대들기도 한다”며 “작년에는 이들을 단속하다 ‘네 몸에는 칼이 안 들어갈 것 같으냐’는 협박전화를 집에서 받고 가족들이 두려움에 떨기도 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들을 상대하기 꺼리는 것은 경찰이나 군인도 마찬가지다. 경찰은 폭죽으로 인한 소음이나 무허가 영업 등을 다루는 것은 1차적으로 행정지도의 영역이라고 보고 인명피해 등의 사건으로 번지기 전에는 가능한 한 개입하려 하지 않는다. 군인들도 자정을 넘어 일출 전까지는 자신들이 해변을 관할해야 하지만 해수욕장이 문을 여는 피서철에는 오전 2시까지는 아예 나오지 않고 오전 2시 이후에도 별다른 제지를 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박 소장은 “속초경찰서에서 임시로 현지에 낙산여름경찰서를 설치하고 주간에는 형사들도 파견하고 있지만 야간에는 주로 파출소 근무 직원들만 남아 있어 전문적인 폭력배를 다루는 업무는 서툴고 군부대에서 나온 헌병파견대도 민간인을 다루는 업무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박 소장은 동해안의 경포, 남해안의 해운대, 서해안의 대천해수욕장을 관리하는 사람들과도 접촉을 해봤지만 대책 마련은 못한 채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는 사실만 확인했을 뿐이다.
폭죽 상인들이 파는 물건은 아이들도 갖고 놀 수 있는 장난감 꽃불로부터 화약으로 분류되는 폭죽까지 다양하다. 장난감 꽃불류는 지상에서 솟는 높이가 15m 이하이고 폭죽 1개당 화약함량도 10g을 넘지 않아 폭음도 그리 크지 않다. 그러나 돈벌이가 되는 것은 강력한 폭발음을 지니고 있거나 다연발로 화려하게 터지는 화약성 폭죽이다. 장난감 꽃불은 화약성 폭죽을 사면 한두개씩 끼워주는 물건일 뿐이다.
장난감 꽃불과는 달리 화약성 폭죽은 총포 도검 및 화약류 단속에 관한 법의 적용을 받는다. 경찰로부터 허가를 받아 사용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실제 그렇게 하는 경우는 없다. 그렇다면 당연히 폭죽 쏘는 일은 경찰이 제지할 수 있을 것이지만 그것도 말처럼 쉽지 않다.
낙산여름경찰서장인 안종구 속초경찰서 방범과장은 “화약류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이 없어 폭죽을 터뜨리기 전까지는 장난감 꽃불인지 화약성 폭죽인지 구별하기 쉽지 않고 폭죽을 터뜨린 후 쫓아가보면 누가 터뜨렸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며 “백사장에 경찰이 수 m 간격으로 서서 감시하지 않는 한 폭죽 단속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물론 휴양객인 양 가장하고 옆에서 지켜보고 서 있다가 잡을 수는 있다. 그러나 안 과장은 “1년 내내 일상에 찌들리다가 휴가와서 스트레스 풀기 위해 술 한잔 먹고 폭죽 한번 쏘았기로서니 그걸 잡느냐고 따지는 관광객들에게는 경찰도 속수무책”이라고 말했다.
올 들어 아직까지 폭죽으로 인한 큰 인명사고는 없었지만 사고의 위험성은 늘 따라다닌다. 해변 모래밭을 걷다보면 폭죽을 사용할 때 쓰는 고정용 철사를 그대로 방치한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수영복 차림의 피서객들에게는 큰 위험이다. 모래찜질을 하기 위해 잘못 눕다가 날카로운 철사에 찔리거나 베이는 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
쉽게 체감되지는 않지만 더 큰 문제는 폭죽 연기에 포함된 발암물질이다. 옥곤 부경대 환경대기학과 교수가 작년 7월 15일 폭죽사용이 많은 밤 9시 해운대 해수욕장 백사장의 대기를 표본조사한 결과 발암물질인 벤젠과 톨루엔이 각각 689.93ppb, 556.94ppb가 검출됐다고 밝혔다. 이는 해운대 해수욕장 인근 지역의 평상시 대기에 비해 벤젠은 60∼70배, 톨루엔은 10배 이상 많은 양이다. 낙산해수욕장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작년 7월 중국 산시(陝西)성에서 무허가 폭죽제조용 폭약공장이 터져 수십명이 죽는 사고가 국내 언론에도 크게 보도된 적이 있다. 이런 곳에서 싼 값에 제조된 폭죽이 국내에 유입되면서 3 ,4년 전부터 여름 해변의 풍경을 급속히 바꾸기 시작했다. 한여름밤 파도소리를 들으며 한낮의 뜨거움을 식히던 해변의 정취가 사라져가고 있다.
송평인기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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