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셀 도큐멘타는 여러모로 이전과 다른 모습과 진행 방식을 택했다. 전통적으로 6월부터 100일간 지속되던 행사가 이번에는 지난해 포럼부터 올해 전시까지 18개월간의 대장정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나이지리아 출신 큐레이터로 1997년 2회 요하네스버그 비엔날레 감독을 맡았던 총감독 오쿠이 웬조는 이번 도큐멘타를 5개의 플랫폼(Platform)으로 나누었다. 5개의 플랫폼은 전시와 포럼으로 이뤄져 있다.
전시를 제외한 4개 플랫폼들은 예술 정치 사회의 제반 문제를 다루는 토론과 협동의 네트워크로 만들어 지난해 3월부터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 등 네 개 대륙을 순차적으로 옮겨다니며 진행돼왔다.
이들 포럼의 주제는 민주주의와 정의 실현, 비(非)식민주의, 문화 혼성의 다양성과 다중심(多中心)주의 등이다.
▼제3세계 작가들 많아▼
전시는 이 포럼의 연속이자 완결이다. 116개 팀의 작가군이 참여한 전시는 프리데리치아눔 미술관과 맥주공장을 개조한 빈딩(Binding), 보조 전시장 등에 작품이 분산돼 있다. 주종은 비디오와 설치로 아프리카나 제3세계 작가들이 많이 포진되었고 사회성이 높은 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들 중 가장 시선을 끄는 작품은 좌파 미술이론가이자 다큐멘타리 사진 작가인 알란 세큘러(미국)의 대규모 사진 시리즈 ‘생선 이야기’로 한국의 울산 조선소가 등장한다.
그는 20세기초의 전투적 노동운동의 센터였던 유럽 조선소의 후예로 부상한 울산에서 민주적 노동 운동의 가능성을 본 것이다.
화려한 아프리카 천을 사용해 18세기 영국 귀족들의 음란한 성인식을 초대형 설치작으로 재현한 인카 쇼비나(영국)의 ‘정사(情事)와 죄스런 대화’, 체포 고문 구금 전투 살인 등 야만적인 잔혹 행위를 고발한 레온 갈럽(미국)의 ‘우리는 너를 사라지게 할 수 있어’, 남아프리카의 깊은 금광에서 일하는 흑인 광부들의 애환을 빛과 어둠의 극적인 대조와 효과적인 금속성의 음향으로 잡아낸 스티브 맥퀸(영국)의 비디오 ‘웨스턴 딥(Western Deep)’, 역시 맥퀸의 작품으로 17세기 서인도제도 카립 인디언들이 프랑스군에 죽음으로 항거했던 사건을 재구성한 ‘카립의 추락’ 등은 매우 인상적이다.
이밖에도 루이즈 부르주아(프랑스) 아넷트 메세저(프랑스) 스턴 더글러스(캐나다) 모나 하툼(레바논) 피에르 위그(프랑스) 애드리안 파이퍼(미국) 한네 다보벤(독일) 온 카와라(일본) 환 뮤노즈(스페인) 등 유명 작가들의 작품도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작품내용 너무 철학적▼
이번 도큐멘타의 성공 여부는 관객이 그 배경과 의도를 얼마나 파악하고 이해하는가에 달려 있다. 그러나 플랫폼의 내용들이 지나치게 학구적이고 전문적이어서 일반인이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기존의 무수한 대형 국제 미술전의 한계를 직시한 ‘도큐멘타 11’의 시도는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이번 도큐멘타가 오늘날 ‘미술이 과연 무엇인가?’라는 진지한 질문으로 이어지기 기대해본다.
강태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pictorial@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