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전 미국으로 유학 가기 직전 처음 영국에 갔을 때 서펜타인 갤러리에 들러 이 곳에서 전시를 해봤으면 하는 생각을 가졌는데 꿈이 실현돼 기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미국에서의 미술 활동을 총정리하는 기회가 됐다는 점에서도 매우 의미있는 전시였습니다.”
개인전에선 60벌의 까만 교복을 마네킹에 입혀놓은 ‘유니폼’, 고교 졸업앨범을 이어 벽지로 만든 ‘우리는 누구인가’, 군번 인식표 10만개를 비늘처럼 엮어 하나의 갑옷으로 만든 ‘섬/원(Some/One)’, 속이 비치는 천으로 한옥을 재현해 공중에 매달아 놓은 설치작품 등 대표작들을 선보였다.
그는 지난해 베니스비엔날레 한국 대표작가로 참가했고 당시 프랑스의 미술전문지 ‘아르 프레스(Art Press)’가 선정한 베니스비엔날레 주목 작가 6인 중 한 사람으로 선정됐다. 올해초엔 미국의 세계적인 미술전문지 ‘아트 포럼(Art Forum)’과 ‘아트 뉴스(Art News)’가 신년호에 나란히 그에 대한 특집기사를 실었다.
‘현대 사회에서의 개인과 전체의 갈등, 유목민처럼 떠도는 현대인의 유랑적 삶을 깔끔하고 서정적인 조형 언어로 형상화했다’는 것이 그의 작품에 대한 서구 화단의 평가.
그러나 작가 스스로의 생각은 좀 다르다.
“저널이나 평론가들이 좀 단정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과 전체도 있고, 유목민같은 삶도 있지만 작품세계가 거기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대개 작품의 한 두겹 정도만 열어 보고 마는 것이죠. 서네 겹 더 벗겨 들어가면 또 다른 그 무엇이 있을 텐데….”
그는 자신을 설치미술작가로만 한정짓는데 대해선 고개를 갸우뚱했다. 자신은 그저 ‘작가’일뿐이라는 것. 작품의 매력과 메시지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도 대답은 단호했다.
“작가는 작품의 매력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메시지 전하려고 작품을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사람들은 작품에서 어떤 메시지를 읽어내려고 하는데 미술활동은 메시지 전달이 주가 아닙니다. 내가 어디에서 와서 왜 여기에 있고 또 어디로 갈 것인가, 이런 질문 속에서 나오는 것이 저의 미술입니다.”
그의 작품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개인과 전체, 유목민의 삶을 넘어 실존적 인간으로서의 고민, 즉 존재의 아득한 심연으로 이끄는 무엇이 있다. 그 아득함이 카타르시스를 가져다준다.
한국화단의 원로인 아버지 산정 서세옥 선생의 영향인지, 아니면 미국에서 조소를 공부하기 이전에 서울대 미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했기 때문인지 그의 작품엔 동양적인 깊이가 숨어 있다. 서도호는 물론 이러한 시각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
런던 전시를 마치고 쉴 법도 한데 그는 여전히 바쁘다. 올해 하반기 미국 시애틀 전시, 호주 브리스번에서의 아시아 퍼시픽 트리엔날레 등에 참가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애틀 전시를 마치면 8월초 한국에 다시 들어와 호주 전시를 준비할 예정이다. 내년 5월엔 서울에서도 전시를 갖는다.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