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빵노동자 겸 제빵기업 CEO인 '신인류' 기무라 슈 이치로 사장. '천연 효모빵', '와인에 빵 안주'를 앞세워 일본의 트렌디 빵집 붐을 이끌고 있다.
일본에선 요즘 이같은 ‘복고풍 빵’이 유행이다. 디자인에도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반죽한 그대로 구워져 나오는 둔탁한 모양이 오히려 소비자들에게 어필한다. 제빵업체 관계자들은 “19세기 빵과 21세기 경영수단이 만나서 최고매출을 낸다”고 말할 정도다. 메종 카이저의 빵은 현재 일본 최고의 럭셔리호텔인 ‘포 시즌’, 도쿄 최대규모의 프랑스식당 ‘시세이도 팔러’와 프랑스대사관 등에도 공급되고 있다.
시부야역 인근 세이부백화점 지하에서 단연 돋보이는 푸드코트는 ‘비노스 야마자키 와이니스트(Vinos Yamazaki Wine+ist)’다. 이곳은 사람들이 모여 커피를 마시고 수다를 떠는 ‘카페’라는 하드웨어에 와인과 빵이라는 콘텐츠를 조화시켜 놓은 ‘혁신적 업소’로 평가받는다. ‘와인 술에 빵 안주’는 퇴근길 맥주집 손님들까지 끌어들이고 있다.
이곳에선 나날이 진보하는 와인 관련 용품도 인기다. ‘와인라벨 컬렉터’는 프랑스에 역수출하는 제품. 와인라벨을 판화 형식으로 찍어내 앨범에 보관토록 한다. 아이스와인을 관리하는 얼음주머니, 먹다 남은 와인에 공기가 통하지 않도록 하는 가스주입기, 와인을 따를 때 뚜껑 부위에 와인이 번져 흐르지 않도록 하는 ‘메탈뚜껑’ 등도 인기상품. 한편 이곳에선 세계각국으로 ‘와인 특사’를 파견해 현지 하우스 와인 생산자들과 계약한 뒤 일본으로 와인을 직송한다. 현지 생산자의 사진, 와인 재배에 얽힌 사연 등을 와인 옆에 안내문 형식으로 붙여 놓는다.
트렌디 빵집들의 중심에는 기무라 슈 이치로(木村 周 一郞·33)가 있다. 그는 도쿄에 있는 5개 빵집의 경영에 참여하며 현재 일본의 빵 문화를 바꿔가고 있다. 그는 원래 일본 최고(最古)의 빵집 중 하나인 도쿄 긴자(銀座)에 있는 ‘기무라빵야’ 창업주의 장손이다. 메이지유신 2년 후인 1870년 문을 열어 15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지금은 긴자에 본점을, 전국 10곳에 체인을 두고 연간 250억엔(약 2500억원)의 매출을 올린다.
그러나 기무라는 현재 공식적으로 ‘기무라빵야’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기무라는 “4대째 대물림을 하고 있는 아버지와는 파트너 관계에 있다. ‘전략적 제휴관계’랄까? 사업상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만 가족 자격으로 조언을 받는다”고 말한다.
오전, 오후로 시간을 나눠 빵집을 돌며 제빵작업에 본인이 직접 참여하기 때문에 기무라의 정체는 ‘최고경영자(CEO)이면서 제빵노동자’로 요약된다. 일단 판매대 앞으로 나온 빵은 자신이 직영하는 빵집이라도 반드시 계산을 하고 사 먹을 정도로 꼼꼼하게 매장을 관리한다.
가업의 영향으로 일찍이 빵 사업에 관심은 많았지만 그의 아버지는 “‘자동승계’는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태도를 분명히 했기 때문에 그는 나름대로의 살길을 찾아야 했다.
그는 일본 최고의 사학(私學)인 게이오 초중고교와 대학(법률학과)을 나온 ‘게이오맨’이다. 초등학교 입학 때 당시 18대 1의 경쟁률을 뚫었던 덕에 대학까지 동계진학할 수 있었다. ‘요치샤(維稚舍)’라 불리는 게이오초등학교는 진학에 있어 집안배경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로 작용한다. 그는 “숙부 외조부 외삼촌이 대부분 변호사라 ‘사법시험을 보라’는 권유도 받았지만 사람의 일을 심판한다는 데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는 도쿄 토박이를 뜻하는 ‘에도코(江戶っ子)’ 중에서도 진짜 에도코다. 그래서 프로야구도 도쿄에 기반을 둔 요미우리 자이언츠 대신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팬이다. “진짜 도쿄인들 중에서는 야쿠르트의 홈인 진구구장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많아요. 자이언츠는 실은 외지에서 올라와 도쿄도민이 된 사람들이 더 좋아하는 팀입니다.”
대학 졸업 후 91년 치요다생명보험(현재는 AIG스타생명에 합병)에 들어가 6년 만에 입사동기 200명 중 가장 빠르게 계장으로 승진했고 20대 후반에 700만엔(약 7000만원)에 육박하는 고액연봉을 받을 정도였지만 빵 사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미국 유학을 결심했다. 그는 “90년대 중후반에 들어서며 일본의 빵업계는 획일적인 맛과 디자인의 빵을 앞세워 사람들의 흥미를 슬슬 잃어가고 있었다.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했다”고 당시를 기억한다.
그는 97년 뉴욕에서 잠시 어학공부를 한 뒤 세계 최고 권위를 가진 미국 캔자스주 미국제빵연구소로 유학을 떠나 실무를 익힌 다음 세계 유명 빵집의 종업원, 아니 ‘인턴사원’으로 현장학습에 나섰다. “일본인들은 프랑스풍 뉴욕풍 빵을 더 이상 원치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파리 최고, 뉴욕 최고의 빵 자체를 도입해야 했다.”
그는 이후 맨해튼의 월가와 첼시마켓 근처의 ‘에이미 빵집(Amy’s Bread)’의 사장에게 편지를 보내 근무허가를 받았다. 여사장이 오너였던 이곳은 뉴욕타임스가 99년 ‘가장 성공적인 여성경영인의 사업체’로 평가했던 곳이다. 이곳에서 그는 ‘즐거움’의 요소가 가미된 빵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스파게티나 꽃의 외관을 모티브로 해 디자인한 빵은 특히 여성들에게 많은 인기를 모았다.
반년 후 그는 프랑스로 건너간다. 르 피가로지가 99년 ‘프랑스 최고의 빵집’으로 선정했던 파리의 ‘카이저 빵집’에서 노하우를 배운다. 가격은 비싸지만 전부 손작업으로 이뤄지는 구식 제빵시스템이 그를 매료시켰다. 겉모양은 투박했지만 천연발효한 효모의 향을 마케팅포인트로 삼았다. 그는 “아무리 잘 만든 덮밥, 볶음밥도 양질의 흰쌀밥처럼 생명력이 길지는 않다”며 천연발효빵의 효용에 대해 설명했다. 지난해 그는 이곳의 에릭 카이저 사장과 손을 잡고 일본에 지점을 내기로 결정을 봤다. 그는 이후 동업과 지분참여의 형태로 5개 빵집을 거느리게 됐으며, 초기투자비용 1억엔(약 10억원)은 삼촌의 빚보증으로 은행에서 대출받았다.
게이오대 스키부 주장이었으며 고교 시절에는 럭비선수로도 활동해 누구보다 여가선용에 관심이 많지만 그는 “30대에는 즐기고 누리기가 두렵다. 빨리 뭔가 이뤄 놓지 않으면…”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경영하고 있는 ‘메종 카이저’나 ‘긴자마쓰야’를 전통있는 가업으로 대물림할 생각도 없다. 당대에, 그것도 가능하면 10년 안에 업적을 만들고 조기은퇴를 이루겠다는 생각이 강하다. 돈이 모이면 빵 사업을 아예 접고 또 다른 사업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현재 그는 1000만엔(약 1억원) 정도의 연간 순수입을 예상하고 있다. 그는 “평균 15시간씩 일하기 때문에 시급(時給)으로 보면 약하다”며 “내 수입으로 훨씬 더 많이 챙길 수 있겠지만 재투자를 통해 열심히 파이를 키우고 있다”고 말한다. 15시간의 노동에는 휘트니스센터에 들르는 1시간도 포함된다. 빵반죽에 필수적인 체력단련인데다, 운동 중 단백질을 섭취할 때도 “이걸 빵 형태로 만들 수는 없을까” 하며 아이디어를 짜내기 때문에 ‘노동’으로 분류한 것. ‘준재벌 2세’임에 틀림없는 기무라지만 그는 오늘도 주행거리 14만㎞가 넘은 도요타제 승합차를 끌고 빵집 순회를 한다. 빵 반죽 운반에도 좋고 작업복과 평상복을 차 안에서 갈아입기도 편하다는 게 이유다.
도쿄〓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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