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일본의 ´신인류´]일본 고교생들의 여름방학 ´빠듯´

  • 입력 2002년 8월 1일 16시 19분


도쿄도립국제고교 학생들. 아르바이트, 학원, 휴대전화, 영어숙제, 토익, 운동부 활동 등이 여름방학을 보내는 이들의 화두다. 도쿄〓조인직기자

도쿄도립국제고교 학생들. 아르바이트, 학원, 휴대전화, 영어숙제, 토익, 운동부 활동 등이 여름방학을 보내는 이들의 화두다. 도쿄〓조인직기자

7월19일 오후 한국의 외국어고와 비슷한 도쿄 메구로(目黑)의 도쿄도립국제고등학교에서 5명의 학생들과 만나 이들의 학교생활과 여름방학 보내기에 대해 들어봤다. 이 학교는 ‘유토리 학습(천천히 학습)’의 하나로 우선 주5일 학습을 실시 중이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올해 4월부터 각급 초중고교에 주5일 수업과 특별활동수업 강화, 필수이수교과목 단축 등을 골자로 하는 ‘유토리 학습’을 권장하고 있다. 지나친 학습부담이 학생들에게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게 이유. 기성세대는 학력저하를 우려하지만 많은 학생들은 ‘뜻대로 시간관리를 할 수 있어 좋다’는 분위기다.

국제고교는 재학생 705명 중 300여명이 일본과 미국의 유수대학에 진학하는 등 도쿄도내 공립학교 중 최고수준의 학력을 자랑한다. 144명이 해외에서 1년 이상 살다 온 ‘귀국자녀’이며 일본국적이 아닌 학생도 한국인 10명을 포함해 55명이나 된다.

(참석자:후카사와 노에·3년, 박정미·재일교포·1년, 스기타 히로미·1년, 이시즈카 아유미·2년, 다카하시 노조무·2년)

-고3이라 학원에 안 다닐 수 없어요. 내년 2월 대입까지 반년밖에 안 남았잖아요. 이과계통으로 진학하려 하는데, 근방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SEG(Science Education Group)’ 학원에서 화학과 생물을 배워요. 도쿄대나 도쿄공대 출신 선생님들이 모여 만든 거래요.

-반에서 한 70%쯤 다니나? 90분짜리 한 과목 들으면 2만엔(약 20만원), 여러 과목을 들으면 10만엔(약 100만원)까지 지출하는 애들도 있어요. 부모님이 아주 싫어해요.(웃음)

-처음엔 주 5일씩 수업하니까 토요일에는 매일 집에서 놀았는데 요즘은 할 일이 더 많아요. 학교 근처 도쿄대 교양학부 캠퍼스에서 토요일마다 고교생들을 위한 교양강좌를 열거든요. 문화사, 정치학 같은 것…. 교수님들이 진학상담도 해 주시고….

-저는 편하게 미용실에 갈 수 있어 좋았어요. 여자애들에게도 요즘 ‘베컴머리’가 인기거든요. 제대로 하려면 3시간쯤 걸리지만 오전에 가면 한산해서 좋아요.

-안정환 머리를 하는 애들도 봤는데…. 한국선수들은 ‘심각해 보이는 표정’이 특히 멋있어요.

-선생님들이 일부러 숙제를 예전보다 더 많이 내줘요. 토요일은 그래서 ‘숙제의 날’이에요. 영어 한 과목만 해도 ‘오즈의 마법사’ ‘동물농장’을 읽고 독후감 써라, 숙어와 구문연습해라 하고 안 해오면 바로 감점해 버려요. ‘스피드’ ‘스타워즈’ 같은 영화를 보고 지문을 써 오라는 숙제도 내줘요.

-직접적인 대학진학과는 상관없지만, 요즘은 학교별로 추천입학제도가 많아져 내신성적도 마음을 놓을 수 없어요.

-저는 재일동포인데 방학 때 한국어를 마스터하려고 해요.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다음으로 제2외국어로 제일 인기가 많은 과목이 한국어죠.

-집이 비교적 가까워서 학교에 오는 데 50분밖에 안 걸려요. 토요일마다 학교 수영장에 나와요. 육상 야구 축구 테니스 검도 배구도 할 수 있어요. 캐치볼 수준이긴 하지만 여자애들도 야구를 많이 하고요. 치어리더부에 들어가려면 시험을 봐야 되지만….

-취직시험에서 영어 토익점수를 요구하는 회사가 갈수록 늘고 있대요. 학교에서 아예 9월부터 1년에 몇 번씩 단체로 시험을 보도록 해서 긴장돼요. 전에는 ‘영어검정시험’(국가에서 급수를 정해 영어능력을 인정해 줌)만 치면 됐는데. ‘귀국자녀(외국에서 살다 온 학생)’들은 900점이 넘는 애들도 있어서 더 노력하지 않으면….

-스위스에서 살다 와서 영어나 프랑스어는 자신있지만 여전히 문법이 넘기 어려운 부분이에요. 서술식이 많은 와세다나 조치(上智)대에 가려면 문법 숙어 구문 참고서를 각 1권씩 독파해야 돼요.

-방학이 되면 ‘공부회(스터디클럽)’을 만들어 학교 강의실에서 공부하는 애들도 많아요. 또 좋은 학교에 가는 아이들은 방학 때도 ‘새벽공부’에 힘을 쓰고….

-영어는 6그룹으로 분반해 수업해요. 아주 잘하는 1그룹은 원어민 선생님과 토론수업만 하고, 2그룹도 어려운 독해책과 문법책을 보고…. 대부분 3, 4그룹에 속해 있어요.

-아직은 1학년이라 방학 때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세이브해 놓으려고 해요. 우리 학년애들은 거의 다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벌죠. 맥도날드와 롯데리아가 제일 좋아요. 시간당 1200엔(약 1만2000원)까지 주는 데도 있어요. 일주일에 2번 나갈 작정인데 한달에 3만엔(약 30만원)은 벌 수 있어요. 동네 케이크집 스테이크집도 일하기 편해요.

-자리가 나야 그런 데서 일하지….(웃음) ‘티슈쿠바리’(전철역 앞에서 광고전단이 붙어 있는 휴지를 나눠주는 아르바이트) 한번 해 보세요. 허리가 휘어져요. 우체국에서 우편분류하는 데는 에어컨도 잘 안 나와요.

-뭐니뭐니해도 잡지모델이 제일 좋을 거예요. 제 친구는 사진 한 번 찍는 데 5000엔(약 5만원)씩 받기도 해요.

-휴대전화 비용이 거의 8000엔(약 8만원)쯤, 메일(문자메시지) 많이 보내는 달은 1만엔까지 나와요. 그래도 8월말쯤에 친구들하고 여행이라도 가려면 이 방법밖에는 없죠.

-여름방학에는 외국여행 가는 애들도 있는데, 수가 많지는 않아요. 캐나다나 호주 자매학교에 20명씩 교환유학으로 2∼3개월씩 다녀오는 애들이 제일 많아요.

도쿄〓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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