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사람들은 한 해 한두번의 바캉스를 위해 1년내내 일을 한다고 한다. 그만큼 그들은휴가를 위해 치밀한 준비를 한다. 그 계획과 준비의 중심에 책이 자리잡고 있다. 오래전에 인간은 길을 만들었고 모험가·상인·성직자·학식자 등이 먼저 여행에 나섰다. 대중들이 여행객으로 나서는 시기는 19세기 초 철도가 생기면서 부터이다.
영국의 토마스 쿡이 세계 최초의 여행업을 시작한 것이 1841년이었다. 영국의 출판인 존 머리는 최초의 여행업자 보다 한 발 앞서 ‘머리의 여행안내총서’를 1836년부터 펴냈고 이를 본받아 같은 해 독일의 칼 베데커가 여행 안내서의 전문 출판사를 설립하고 ‘라인여행’을 출간했다. 대중여행의 시대를 열어간 열쇠가 바로 ‘책’이었다.
유럽에서는 책과 담을 쌓은 사람이라도 몇 권의 여행 안내서와 여행기 그리고 지도를 간직하고 있다. 영국인은 여행을 가장 ‘지혜롭게’ 하는 국민이라고 한다. 세계 제일의 독서열을 자랑하는 이 나라 국민이 즐겨 읽는 책은 여행기와 역사책이다. 좋은 여행 안내서는 정보만을 나열한 가이드북이 아니다. 그것은 낯선 땅, 이국(異國)의 풍물, 역사와 문화를 들여다보며 미지의 세계로의 꿈을 키우는 유혹의 초대장이다.
예부터 인생은 나그네 길에 비유되었다. 인간이란 ‘여행하는 자’(호모 비아토르)이기도 하다.더욱이 오늘날에 와서 여행은 더 이상 한 해 한 두 번으로 그치는 이벤트가 아니다. 우리는 모두 비즈니스를 위해 혹은 즐거움을 위해 ‘여행하는 자’가 되었다. 좋은 여행은 바로 좋은 삶, 좋은 인생이다.
좋은 여행이란 무엇일까. 여행이란 보는 즐거움이다. 그런데 우리들은 아는 만큼 보고 본 만큼 즐긴다. 피라미드나 만리장성에 관한 역사적 지식이 없이 그 앞에 선들 무엇을 볼 것인가.
여행이란 바로 역사의 기행이다.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토스 이래 뛰어난 역사가는 또한 여행가였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의 저자 부르크하르트는 스스로를 르네상스와 그리스 문화의 ‘치체로네’(안내인)라 했다. 기븐의 ‘로마제국쇠망사’가 오늘날에도 크게 감명을 주는 것은 그것이 저자의 로마·이탈리아 체험의 결실이었다는 사실과도 관련이 있다 할 것이다.
여행은 또한 많은 경우 미술기행이기도 하다. 대만의 고궁박물원(故宮博物院)이나 파리의 루브르 미술관에서 모든 작품 앞에서 기웃거린다면 얼마나 바보스러울까. 우리는 어디에서건 말을 달리면서 꽃을 보는(走馬看花) 식의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미술사상 명품으로 이름 높은 몇 점과 그밖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오래 전부터 보고 싶었던 작품들을 선별하여 감상하면 된다.
이 선별과 감상을 위해서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여행이란 ‘만남’이다. 지중해나 성 마르코 광장과의 만남, 베이징의 유리창가(琉璃廠街)나 천목(天目) 자기, 사르트르 대성당이나 클림트와의 만남. 이 만남을 위해 우리는 준비해야 한다. 그 중심에 책이 자리한다.
여행은 나그네길, 모든 것들을 떨쳐버리고 떠난다 하지만 실은 나의 모든 것들을 갖고 가는 길이다. 갖춘 만큼 거두고 돌아오게 마련이다. 한 국민의 수준을 여행문화의 높이에서 찾는다면 지나친 말일까.
일상적인 속사(俗事)에서 해방되는 여행의 최대 공덕은 아무래도 그것이 여유(閑)를 즐기는 놀이의 나날이라는 점에서 찾고 싶다. 놀이란 일탈(逸脫)의 즐거움, 스스로를 ‘유배자’로 여긴 문인 묵객들을 따라 멋스러운 보헤미안이 되자.
몇 해 전 여름 이탈리아 여행에서 60세 전후의 아버지와 대학 신입생 아들을 만났다. 그들은 이번이 자신들의 첫 유럽 여행이라면서 로마에서 며칠 묵은 뒤 베네치아와 피렌체를 구경하고 귀국한다는 말을 들려주었다. 그 부자(父子)는 ‘로마인 이야기’와 그 저자의 모든 책의 애독자였다. 새로운 것, 예기치 못한 감동으로 우리를 풍요롭게 하는 점에서 여행은 책과 닮았다고 할 것이다.
이광주 인제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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