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가을 겨울의 세 계절만 있고 여름이 없다면, 죽는 사람이 필시 드물어져 의사나 종교인들이 굶주림에 고생할 것이다.”
청나라 초엽의 극작가 이어(李漁)가 장난기 섞어 한 말이다. 여름에 대해 가혹하게 내린 평이지만 무더위를 탓하는 마음은 수긍이 간다.
그는 여름철을 나는데 가장 좋은 방법으로 세상사와 관련을 끊고 무사(無事)로 보내는 것을 제안했다. 피서여행도 그 중 하나로 적격이리라. 그것이 귀찮고 힘들다면 시원한 창가에 누워서 산수기(山水記)를 읽는 것, 이름하여 ‘와유산수(臥遊山水-누워서 산수를 여행한다)’를 하는 것도 좋겠다. 왜냐하면, 실제 여행은 봄 가을에 하고 여름에는 산수기를 읽으며 상상의 여행을 즐겼던 오랜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산수기의 독서에서 여름더위로부터 도주하는 즐거움을 느꼈을까 의문을 품을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은 그랬다.
현재 대부분 여행 안내서가 기껏해야 명승지의 볼거리와 문화재, 음식점을 소개하는데 그치고 있다면 옛 지식인들의 산수기는 여행지 안내 이상의 의미와 재미를 제공하였기 때문이다. 산수에 대한 소상한 정보와 안내뿐만 아니라 여행자의 독특한 체험, 인생, 철학, 예술을 담은 멋진 작품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산수기에서는 여행자의 깊고 진지한 사색을 엿볼 수가 있다.
조선시대에는 산수체험에 대한 형언할 수 없는 열정의 소유자가 적지 않았다. 그들은 명산만이 아니라 가까운 곳의 알려지지 않은 산수에서까지 발견의 기쁨을 누리고자 하였다. 그들이 산수에서 찾은 것은 산수의 외형적 아름다움도 아름다움이지만 그 이상의 것이 있었다. 유명한 성리학자 어유봉(魚有鳳)은 ‘동유기(東遊記)’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산을 유람하는 것은 독서하는 것과 같다. 보지 못한 것을 보는 것도 좋기는 좋지만 실은 충분히 익히고 또 익히는 데 핵심이 있다. 굽이굽이 환하게 파악하고, 그 자태를 또렷하게 간직하고, 그 정신과 통해야만 비로소 터득하는 것이 있다. 서둘러 대강 섭렵하고서야 무슨 수로 그 오묘한 경지로 나아갈 수 있으랴?”
독서와 마찬가지로 산을 대강 섭렵해서는 산의 오묘한 깊이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시대에는 독서에서도 섭렵이 아니라 숙독을 강조한 것처럼 산을 보는 깊숙한 수련을 요구하였다. 비슷한 시기의 학자 이하곤(李夏坤)은 “산을 유람하는 것은 술을 마시는 것과 같다. 그 깊이는 각자의 국량에 따라 정해지고, 그 아취(雅趣)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얻는 것은 겨우 겉모양에 불과하다.” “산수를 보는 것은 미인을 보는 것과 같다. 경험이 많은 자라고 해도 이름만 듣고 그 얼굴을 실제로 보지 못했다면 약한 마음에 이끌리게 마련이다.”고 말했다. 유명한 화가이며 시인인 이인상(李麟祥)은 산수의 품격(品格)을 알려면 신령한 정신과 지혜의 눈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한 바도 있다.
산을 노니는 것을 독서, 음주, 미인을 보는 것에 비유하고, 산수를 알기 위해 지혜까지 갖추어야 한다는 말에는 현대인의 경박함과는 다른 자세가 엿보인다. 지나치게 즉흥적이지도 않고 지나치게 진지하지도 않은 이러한 자세는 산수에 대한 따뜻한 애정, 산수탐방에 대한 천박하지 않은 취미를 드러낸다. 산수의 품격을 논하고 산수를 감상할 줄 아는 소양과 안목을 기르고자 한 선인들의 자세는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지식으로 산수를 아는 것이 아니라 체험으로 느꼈기에 할 수 있는 말이 아닐까?
한국 산수의 멋을 가장 잘 아는 분이라 칭송을 받은 김창흡(金昌翕)이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는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낭떠러지와 정상을 뒤져 오르고 구름과 달을 뒤쫓아 가노라면, 절로 마음에 맞을 뿐만 아니라 나에게 슬픔과 괴로움이 있다는 것을 잊게 된다. 내게는 산천이 진실로 좋은 벗이요 훌륭한 의원이다.”
과거에도 기생을 대동하고 가마를 탄 채 산에 올라 풍악을 잡히고 술잔치를 벌이며, 바위에 이름을 크게 새겨놓는 불경하고 볼썽 사나운 짓거리를 한 자가 허다하였다. 하지만 더위로부터 도주하기 위해 산과 계곡을 짓밟는 일은 많지 않았다. 산수에 포용되기를 갈망하는 저러한 심성의 사람들이 그런 짓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선인들의 산수기를 읽다보면, 산수를 향한 저급한 피서여행과는 너무 다른 산수의 품격을 즐길 줄 아는 여행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안대회 영남대학교 한문교육과 교수 ahnhoi@yumail.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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