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를 보내며]“한편의 詩와 함께 마음의 여유를”

  • 입력 2002년 8월 5일 18시 34분


《‘시 사랑’의 마음을 담은 릴레이 형식의 새 연재물 ‘이 시를 보내며’를 매주 문화면에 수시로 싣습니다. 문화계 인사들이 가까운 지인이나 평소 만나고 싶었던 사람에게 감동 깊은 시 한편과 짧은 안부사연을 담아보내는 시리즈입니다. 시를 통해 삶의 감동과 의미를 새롭게 느껴보는 이번 시리즈에 독자 여러분의 관심과 사랑을 부탁드립니다.<편집자주>》

▼이 시를 보내며 from:최영미▼

널빤지에서 널빤지로/에밀리 디킨슨

널빤지에서 널빤지로 난 걸었네

천천히 조심스럽게

바로 머리맡에는 별

발 밑엔 바다가 있는 것같이.

난 몰랐네- 다음 걸음이

내 마지막 걸음이 될는지-

어떤 이는 경험이라고 말하지만

도무지 불안한 내 걸음걸이.

▼˝글쓴지 10년…선생님 그윽한 정이 떠오릅니다˝to:강은교▼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선생님이 번역하신 디킨슨의 시를 최근에 다시 읽었습니다. 이 널빤지에서 저 널빤지로, 여기에서 저기로 건너뛰며 불안해하는 순수함이 내게도 있었던가? 이미 잃어버린, 제가 다시 쓸 수 없는 시이기에 더욱 애틋했습니다. 발 밑에 깊은 물이 있는 것도 모르고 다리 위에서 첨벙대는 어린애처럼 저 또한 무모했었지요. 제 이름을 걸고 글을 쓴 지 십 년. 그동안 무얼 했던가, 후회와 허망함을 삼키고 다음 걸음을 준비해야겠습니다.

선생님의 그윽한 향기를 기억하며….

-2002년 여름. 일산에서 최영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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