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속의 에로티시즘]흑맥주 기네스 광고

  • 입력 2002년 8월 8일 16시 11분


흑과 백, 이 세상을 표현할 수 있는 색 두 가지를 고르라면 아마 양 극점에 있는 이 두 색깔이 확실한 후보에 오를 것이다. 그것은 어둠과 광명을 대변하기도 하고 사탄과 천사를 떠오르게도 하며, 흑인 백인의 인종 대립을 나타내기도 한다. 또한 우리는 흑백논리라는 말로 경직된 사고의 틀을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두 가지 색은 동종이체이다. 명도와 채도에 있어 서로 다른 극점에 위치해 있을 뿐 검은 색엔 흰색이, 흰색엔 검은 색이 이미 포함되어 있다. 어둠은 광명을 전제로 한 것이고, 흑인 역시 백인이 있기에 부각되는 개념이다.

이처럼 서로 극을 달리면서 하나로 수렴되는 흑과 백을 한 몸에 담은 제품이 있다. 24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아일랜드의 흑맥주 기네스(Guiness)가 그것. 까만 맥주 위에 얇게 얹힌 하얀 거품, 사람들은 기네스의 씁쓸한 뒷맛에도 열광하지만 잔에 따랐을 때 드러나는 아름다운 흑백 영상의 한 컷에도 함께 취한다. 검은 색만 있으면 그것은 기네스가 아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기네스는 제품이 가진 흑백 이미지의 절묘한 조화를 통해 소비자와 커뮤니케이션 한다.

그 흑백 조화의 아름다움은 에로틱 광고에서도 빛을 낸다. 싱가포르에서 제작된 광고 한 편을 보자. 언뜻 보기엔 맥주잔에 가득 부어진 기네스인 것 같다. 그러나 찬찬히 들여다 보면 여자 몸의 굴곡이 드러나 있다. 맥주와 거품의 형상을 보일 듯 말 듯 드러난 여성의 신체로 표현한 이 광고는 흑백으로 대변되는 기네스의 이미지를 에로틱 이미지로 해석한 작품이다. 여성의 가슴, 등, 엉덩이, 허벅지 부분을 클로즈업하고 실크 스커트, 니트의 질감을 까만 맥주와 하얀 거품의 질감과 짜맞춘 디테일이 눈에 들어온다. 마치 어떤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식의 편집증 코드를 활용했다. 이 세상의 흑백으로 이루어진 사물이라면 무엇이든 기네스로 치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엿보인다.

그 자신감은 기네스란 브랜드 이름조차 밝히지 않은 배짱으로도 확인된다. 이름 알리는 것이 목적인 광고에서 이름을 밝히지 않다니…. 카피가 던지는 질문은 “무엇이 떠오릅니까(What’s on your mind)?”‘흑백으로 이루어진 멋진 거 하면 기네스잖아. 그것도 몰라?’하고 속삭이는 거 같다. 아는 사람은 다 알아서 마시니까 굳이 말할 필요 없다는 식이다.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흑맥주 '기네스'의 광고. 맥주가 아니라 검은 드레스를 입은 여체처럼 보이는 이미지이지만 제품명도 밝히지 않고 '무엇이 떠오릅니까?'라는 도발적인 카피만을 던졌다.

기네스가 이런 식의 당당함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브랜드 파워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브랜드가 명 브랜드가 되기까지는 품질관리부터 이미지 포지셔닝까지의 전반적 마케팅 활동이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 과정은 길고 험난하지만, 일단 명 브랜드의 반열에 오르게 되면 의연한 자세를 취할 수 있게 된다. 떠벌리지 않고도 소비자를 끌어당길 수 있다.

기네스는 흑백이라는 제품이 지닌 특징을 브랜드 자산화 하는 데 성공했다. 흑백의 모든 것에 기네스만 붙여도 말이 통하는 지위를 얻게 된 것이다. 다른 브랜드가 그런 시도를 했더라면 사람들은 믿어 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브랜드 파워의 있고 없음의 차이다.

그 점은 모든 세상사에도 적용된다. 지금까지 수많은 비디오 아티스트가 등장했지만 원조는 백남준이다. 수많은 록그룹이 명멸했지만 비틀스는 늘 앞에 서 있다. 세상살이는 브랜드 파워 경쟁이다. 누가 더 확고하게 자기 이름 석자의 브랜드 가치를 키우느냐에 따라 승부는 결정된다.

디지털 시대엔 5 대 95의 사회가 존재한다고 한다. 파워있는 5가 나머지 95를 독식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거부할 수 없는 흑백논리가 될 듯하다.

김홍탁 광고평론가·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