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유 레디”
“오 케이”
“레츠 고”
짧은 문답이 오가자마자 몸이 빨려가듯 휘잉 솟구쳐 올랐다. 순간 앞에 있던 남자 배우의 목인지 어깨인지를 나도 모르게 움켜잡았다. 줄을 타기 전 안전요원이 “지금까지 한번도 사고난 적이 없다”며 기자를 안심시켰으나 허사였다. 평소 80kg의 몸무게를 의식해 온 기자는 발이 바닥에서 떨어지는 순간부터 온 몸에서 식은 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금세 올라간 높이가 17m.
날개를 단 듯 회전하며 몸이 뒤집히자 놀이 공원의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현기증이 났다. 두 눈을 겨우 가늘게 뜨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600여명의 관객이 환호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멍할뿐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델라구아다’ 공연의 백미인 ‘비행(플라잉)’.
‘비행’은 곧 자유다. 날지 못하는 인간들의 욕망을 채워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델라구아다’ 공연에서 한회에 서너명씩 ‘비행’에 참여시키는 것은 팬 들의 잠재된 욕망을 채워주는 ‘팬서비스’다.
회전 비행을 시작한 지 몇 초가 지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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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서야 ‘편안한 비행’이 시작됐다. 얼굴을 간질이는 바람의 상쾌함도 느낄 수 있었다. 공연장 3층에서 줄을 끌어당기는 등 두사람의 비행을 조정하는 스태프의 바쁜 손놀림도 보이기 시작했다. 기자를 끌어안은 배우에게 ‘Nice to Meet You(반갑습니다)’라고 인사말을 건넬 만큼 여유도 생겼다. 미국인 남자 배우는 짧은 순간에 일어났던 기자의 심경 변화는 모르는 듯 계속 크게 웃으면서 손짓으로 관객들의 환호에 답했다. 공연 자체를 즐기는 배우의 연기가 진정한 프로페셔널의 모습으로 전해졌다.
공중 비행 체험 시간은 30초 남짓.
두려움으로 시작한 체험은 아쉬움으로 끝났다.
비언어극 ‘델라구아다’는 매 공연마다 4명이 공중 비행을 한다. 이중 극 도입부에서 천정에서 내려온 남성 배우에게 납치돼 올라가는 이는 공연의 멤버이고 나머지는 남성 배우들이 임의로 선정한 이들이 ‘납치된다’. 대부분 ‘비명’ 효과가 크고 ‘눈요기 거리’가 많은 여성들이다. 장동건 등 연예인들은 사전 섭외를 거쳐 비행 기회를 가졌다.
‘비행’에 대한 반응도 각양 각색이다.
하늘로 솟구치는 순간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배우를 연인처럼 껴안기도 한다. 한 여성 관객은 “짜릿한 비행이었으나 남성 배우과 너무 밀착돼 민망하기도 했다”고 얼굴을 붉혔다.
7월말 개막해 1년간 장기공연되는 이 공연은 “서커스 아니냐”는 질시에도 불구하고 매회 600여 객석이 매진을 기록하는 등 인기를 끌고 있다.
공연 프로듀서인 설도윤씨는 “월드컵 열기의 공백을 허탈해하는 젊은 층이 남미의 열정적 공연에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 같다”며 “공중 체험 이벤트에 이어 배우들이 발을 구르면 관객들은 그에 맞춰 ‘대∼한민국’을 외치기도 한다”고 말했다.
공연은 화수목 오후 8시, 금 오후 8시, 10시반, 토 오후 7시, 10시. 일 오후 7시. 5만, 6만원. 02-501-7888, 1588-1555
황태훈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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