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vs 디지털]슈베르트 피아노 5중주 '송어'

  • 입력 2002년 8월 13일 19시 04분


1967년 말보로 음악축제 공연실황을 담은 소니사의 슈베르트 ‘송어 5중주’ 음반(왼쪽)과 ‘아르스 비벤디’ 레이블로 발매된 디지털 음반.
1967년 말보로 음악축제 공연실황을 담은 소니사의 슈베르트 ‘송어 5중주’ 음반(왼쪽)과 ‘아르스 비벤디’ 레이블로 발매된 디지털 음반.
대기는 눅눅하고, 출근길에 바라본 강은 온통 흙빛이다. 기다리던 휴가는 덧없이 흘러가 버렸다. 무슨 신나는 일이 남아있을 수 있을까.

그러나 귀기울여 보라. 마음 속의 시냇가에선 맑은 물소리가 들린다.

70년대의 젊은이들은 머리 속에서나마 갑갑한 세상을 벗어나 동해로 고래사냥을 떠났다. 90년대의 문학팬은 은어가 돌아오는 남대천 맑은 포말을 가슴에 품었다. 반면,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음악팬의 마음속에 흐르는 맑은 물소리는 송어가 잡히는 시내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두터운 안경을 낀 슈베르트가 물보라 튀어오르는 물가에 미소 지으며 서있다.

슈베르트의 피아노 5중주 ‘송어’에서 가장 남다른 점을 꼽자면, 이례적으로 콘트라베이스 가 참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아이디어가 얼마나 멋진 결과를 낳았는지는 음반을 들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이 육중한 악기는 다섯 악장 내내 쿵쿵 울리고 뒤뚱거리며 유쾌한 분위기를 불어넣는다. 가곡 ‘송어’의 선율을 가져다 쓴 4악장이 가장 유명하지만, 흔들흔들 시냇가를 산책하는 듯한 마지막 악장이야말로 듣는 사람을 무장해제시킨다. 바늘 끝 같던 신경이 고양이털처럼 녹신해진다.

1967년, 미국 버몬트주의 말보로 음악축제에서도 이 ‘백만인 취향’의 5중주가 연주됐다. 피아노에 루돌프 제르킨, 바이올린에 제이미 래리도, 첼로에 레슬리 파르나스 등 비중있는 명인이 출연해 시종 느긋한 분위기로 연주를 이끌어나간다.

적당히 두터우면서 또렷한 음질은 60년대의 것임을 잊게 만들며, 모든 악기가 피아니시모로 잦아드는 부분에서는 또륵또륵하는 귀뚜라미 소리가 대신 귀를 채운다. 별빛과 함께 음악을 감상하는 미국식 ‘평원 음악축제’만의 즐거움이다. 발매사는 콜럼비아레코드사의 후신인 소니.

디지털 녹음으로서 기자가 가장 즐겨듣는 음반은 단연 페터 뢰젤(피아노), 칼 수스케(바이올린) 등이 연주한 ‘아르스 비벤디’의 앨범이다. 연주자들은 약간 템포를 당겨, 퐁퐁 튀는 듯한 밝음을 전면으로 내세운다. 마지막 악장에서 샴페인 마개를 딴 듯 용솟음치는 피아노와 현의 대화가 압도적이다.

‘아르스 비벤디’는 80-90년대에 구 동독 국영 음반사인 ‘도이체 샬플라텐’의 녹음 라이브러리를 서방에 소개해 이름높던 레이블. 난다 긴다 하는 서방 음반사들이 깜짝 놀랄 정도의 고품질 녹음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 음반에서도 눈을 감고 있으면 연주자들의 손놀림이 보이는 것 같다. 오늘날 이 레이블은 ‘베를린 클래식스’라는 이름으로 또 한번 변신했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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