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를 울리던 우뢰소리들도 이젠
마치 우리들의 이마에 땀방울이 걷히듯
먼 산맥의 등성이를 넘어가나보다.
역시 나는 자정을 넘어
이 새벽의 나른한 시간까지는
고단한 꿈길을 참고 견뎌야만
처음으로 가을이 이 땅을 찾아오는
벌레 설레이는 소리라도 듣게 되나보다.
어떤 것은 명주실같이 빛나는 시름을,
어떤 것은 재깍재깍 녹슨 가윗소리로,
어떤 것은 또 엷은 거미줄에라도 걸려
파닥거리는 시늉으로
들리게 마련이지만,
그것들은 벌써 어떤 곳에서는 깊은 우물을 이루기도 하고
손이 시릴 만큼 차가운 개울물소리를
이루기도 했다.
처서 가까운 이 깊은 밤
나는 아직 깨어 있다가
저 우뢰소리가 산맥을 넘고, 설레이는 벌레소리가
강으로라도, 바다로라도, 다 흐르고 말면
그 맑은 아침에 비로소 잠이 들겠다.
세상이 유리잔같이 맑은
그 가을의 아침에 비로소
나는 잠이 들겠다.
▼고형렬 시인이 최영철 시인에게▼
시인은 가슴으로 쓴다. 오랜만에 술이 취했고, 정신이 번쩍 났습니다. 한 건축사가 주고 간 그 말을 잊지 않으렵니다. 처서의 가슴이, 벌레울음이 저 아침 풀밭에 있군요. 작고한 박성룡 시인의 ‘처서기’가 가슴에 와닿습니다. 참, ‘시평’지에 보내주신 시 ‘소녀별 둘’ 잘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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