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남대총은 표주박 모양의 쌍분(雙墳)이다. 5세기 전후에 축조된 부부묘로, 남성 무덤인 남분(南墳)이 먼저 축조됐고 여성 무덤인 북분(北墳)이 나중에 축조됐다. 황남대총은 목관과 부장품을 안치한 뒤 그 위에 돌을 쌓고 다시 흙으로 둥글게 봉분(封墳)을 다져 만든 적석목곽분.
국립문화재연구소의 ‘황남대총 발굴보고서’엔 축조 인원에 대한 추론이 가능하다.
우선 남분을 보면 봉분의 흙이 3만9718㎥, 관 위에 쌓은 돌이 1290㎥, 주변 호석(護石) 이 816㎥. 당시 사람들이 50m 떨어진 곳에서 무덤으로 흙과 돌을 옮겼다고 가정하면 1인당 하루에 옮길 수 있는 흙의 양은 1.6㎥, 돌의 양은 1.2㎥. 각각 2만4823명, 1075명이 동원됐을 것이다. 주변 호석 쌓기에도 680명이 필요하다.
또한 고분 터 정지작업에도 인력이 들어간다. 1인당 하루 10㎡를 정지할 수 있다고 볼 때, 면적 5625㎡의 남분을 정지하는 데는 약 563명이 필요하다. 이상의 인원만 따져보아도 2만7141명이다.
여기에 목관을 만들거나 돌 다듬는 사람도 필요했다. 흙을 높이 쌓으면 쌓을수록 일이 힘들기 때문에 운반량이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이를 감안하면 3분의 1의 인력이 더 필요하다. 남분엔 9144명이 추가로 필요하다. 따라서 남분 축조에만 투입된 총 연인원은 3만6285명에 이른다.
그럼 하루엔 몇 명이 일했을까. 고고학자 토목공학자들은 1인당 하루 작업공간의 범위를 16㎡ 정도로 본다. 남분 면적이 5625㎡이니 이 곳에서 352명이 일할 수 있고 결국 매일 300여명의 인원이 121일 동안 황남대총 남분을 축조한 셈이다.
황남대총 북분은 남분 일부를 잘라내고 거기에 붙여서 만들었다. 따라서 남분을 잘라 흙을 퍼낼 인력 6649명이 더 들어간다. 이렇게 계산하면 총 3만7021명. 약 200명이 185일 작업한 것이다. 참고로 알아보면 천마총은 100여명이 90일간 축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진시황릉은 30여년에 걸쳐 연인원 70만명이 동원됐다고 한다.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