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국내 최초의 완역본인 데다 영화의 흥행 성공과 맞물리며 황금가지의 반지 시리즈는 지금까지 100만부 가까이 팔렸다. 애초 영화의 수입과 배급을 맡은 태원엔터테인먼트사와 시네마서비스가 제목을 ‘반지전쟁’으로 확정했다가 출판사측의 집요한 설득에 따라 ‘반지의 제왕’으로 바꾼 것도 성공 요인이었다.
그러나 재계약을 앞두고 영국측이 인세 10%(종전 6%)에 톨킨의 다른 저작물도 함께 출간할 것을 요구하면서 일이 틀어졌다. 황금가지 측은 “한국의 출판 사정을 감안하지 않은 저자측의 무리한 요구”라며 반발했고, 저작권을 중계한 에이전시측은 “그렇다면 자유경쟁으로 재계약을 하겠다”고 맞섰다. 결국 황금가지가 경합을 포기한 가운데 ‘씨앗을뿌리는사람’(이하 씨앗)이 국내 판권을 소유하게 됐다.
씨앗측은 계약금이나 인세 등 구체적인 조건을 밝히지 않고, 오는 11월5일 업그레이드된 ‘반지의 제왕’을 선보이겠다고 말한다. 텍스트만 있는 기존 책들과 달리 일러스트판이며 6권짜리 페이퍼북과 3권짜리 하드커버로 출간할 예정. 톨킨의 다른 작품 ‘호비트’와 ‘실마릴리온’도 내년 봄 잇따라 나온다.
흥미로운 것은 씨앗이 내세운 김번, 이미애, 김보원씨가 10여년 전 ‘예문’에서 출간한 ‘반지전쟁’의 번역자들이라는 점이다. 씨앗은 예문으로부터 ‘반지전쟁’ 번역 텍스트를 인수해 3명의 번역자들과 수정작업에 들어간 상태.
사실 1991년 11월 예문이 펴낸 3권짜리 ‘반지전쟁’은 비록 해적판이지만 2001년 황금가지 판이 나오기 전까지 톨킨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예문측은 꾸준한 인기에 힘입어 98년 3권짜리를 5권으로 늘려 재출간했다. 6권짜리를 제멋대로 5권으로 만든 것이나 작위적인 제목, 오역 등이 늘 지적 대상이었으나, 황금가지 책의 직역투 번역에 비해 유려한 문체가 읽는 맛이 있다고 평가하는 이들도 있다. 그 밖에 영화의 인기를 배경으로 동서문화사가 오래 전 해적판으로 냈던 ‘호비트’와 반지 시리즈를 묶어 최초 7권짜리 ‘반지전쟁’을 펴내기도 했다.
일단 1차 판권이 만료되는 내년 6월까지 황금가지의 ‘반지의 제왕’과 예문의 ‘반지전쟁’(오는 9월까지만 판매할 수 있다), 씨앗의 ‘반지의 제왕’(가제목), 동서문화사의 ‘반지전쟁’이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출판계는 벌써부터 과잉중복 출판을 걱정하고 있다. 번역자이며 펍헙에이전시 대표인 강주헌씨는 “한국시장에서 해외 번역물의 인세는 6~7% 정도가 적당하다. 베스트셀러라 해도 10%까지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면서 “특정 에이전시가 잘 나가는 해외출판사와 독점관계를 유지하는 한 국내 출판사들은 계속 에이전시에 끌려다니는 계약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출판계의 ‘반지전쟁’, 누가 마지막에 웃을까.
< 김현미 주간동아 기자 >khmzi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