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병우의 사진 '바다'시리즈
옆구리에 끼고 온 것이란 때 묻은 담요 한 장과
고단한 몸 눕혀 아름다운 꿈 청하기에 넉넉한 베개
이제 와서 보니 이것도 한갓 무용지물에 지나지 않는다.
밤마다 뒤척이는 바다를 베고 잠들 수 있고
아무래도 시린 어깨는 한 자락 파도를 끌어다 덮을 수 있으니
가난은 나의 고향
가난만이 살림의 밑천이었던 어머니의 무덤
기둥에 머리를 처박고 마루 끝에 앉아 있던
번번이 남루의 헌 보따리를 들고 오는 가난이여
오늘은 내가 가진 바다를 죄다 돌려주려 한다.
해 돋는 아침과 달 오르는 저녁의 바다 봉두난발이 되기 전에
언제라도 풍족하게 머물다 가도록 자리 비워 두었으니
어려워 말고 문을 두드려라. 밤새 불을 밝힐 기름도 있으니
그러나 어쩌랴 저 무변의 바다를 다 소유하고도 빈 주먹뿐이다.
김석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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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서둘러 갈 필요 없겠지요
최영철시인이 진명스님께
진명스님께(불교방송 ‘차 한 잔의 선율’진행자)
그때 경주 석굴암 올라가면서, 시원한 바람이 승복 바지가랑이 사이로 설렁설렁 들어오는 이 맛에 중노릇 한다던 말씀이 잊히지 않습니다. 또 가파른 산길을 힘겨워하는 동행을 위해 자꾸 걸음을 늦추시던 것도 잊히지 않습니다. 삶의 이유 역시, 그렇게 거창한 것도, 그렇게 먼저 서둘러 갈만한 것도 아니겠지요. 마침 그 텅 빈 가난의 즐거움을 최근에 나온 김석규 시인의 시집 ‘적빈을 위하여’에서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