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엔 매순간 막대한 양의 물류가 컨테이너에 담긴 채 세계 각 지역으로 이동한다…컨테이너는, 국경을 넘나들며 문화의 전파와 교류에 일익을 담당하는 개방형 미술작가들의 유목주의적 삶과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담는 용기를 상징한다…이들의 작품을 통해 내용물을 담는 과정과 옮기는 과정 그리고 다시 부리는 과정이 나타난다고 기대한다.’
그러나 전시장을 찾았을 때, 기대는 기대로 끝나고 말았다. 가장 큰 원인은 전시 테마와 작품이 그리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전시엔 박소영 박이소 안규철 조덕현 최정화 등 40대 중심의 중견 작가들이 참여했다. 그 면면을 보면 모두들 역량을 인정받고 있는 작가들이다. 그럼에도 개별 작품은 눈길을 끌지만 ‘컨테이너’라는 테마전의 내용물로는 왠지 어색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기획 의도에 작품을 꿰맞췄기 때문이 아닐까.
정재철의 작품 ‘무제’는 여러 지역을 여행하면서 수집해 온 것들을 수십개의 나무 박스에 넣어 전시했다. 하지만 컨테이너적 삶, 컨테이너적 시대에 대한 고민이 절실해 보이지 않는다. 그저 낭만적인 대상일 뿐이다.
출품 작가 중 몇 명은 외국에서 거주하고 있다. 주최측은 ‘이들이 이주(移住) 혹은 이산(離散)의 삶을 직접 체험하는 여정의 작가이고 따라서 물류 이동의 도구인 컨테이너라는 컨셉에 어울린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주 이산의 삶을 컨테이너 이미지에 비유한다는 것이 다소 기발한 상상력의 산물일 수 있지만 그리 적합한 상상력 같이 보이지는 않는다.
그나마 이번 전시회의 독특한 테마에 어울리는 작품은 김주영의 ‘바라나시에서 온 물고기’, 안규철의 ‘움직이는 산’ 정도. 전시 팜플렛에 소개된 조숙진과 최정화의 전시작이 실제 출품작과 다르다는 점도 아쉬움의 하나다.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