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묻는다면 나는, 아마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몰라 눈만 데굴데굴 굴리고 있을 것 같다.
지금으로부터 420년전인 1582년, 이탈리아의 평범한 방앗간 주인이 이단재판을 받고 있었다. 이단 심문관들은 놀란 표정으로 다음과 같은 진술을 듣고 있었다.
“태초에 이 세계는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거품과 같은 것이 바닷물에 부딛쳐 마치 치즈처럼 엉켜 있다가 이 모든 것이 함께 하나의 큰 덩어리를 형성하는데, 이는 마치 우유에서 치즈가 만들어지고 그 속에서 구더기가 생겨나는 것과 같습니다. 그 구더기들이 인간이 되었고, 이 구더기들 중에서 나비 천사가 나고, 가장 강력하고 현명한 자가 하느님이 되었습니다.”
“신성(神性)은 선행을 많이 행할 줄 아는 훌륭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육신이 죽으면 영혼도 죽습니다. 왜냐하면 저 위에서는 그것들이 활동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법정에서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라틴어로 말하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배신입니다.”
이 길고 길었던 재판의 주인공은 도메니코 스칸델라. 메노키오라는 별명을 가진 하찮은 사람이었다. 메노키오는 1582년 51세의 나이에 이단혐의로 피소되고, 이후 투옥과 방면을 여러 번 반복하다가 결국 1599년, 화형에 처해졌다. 메노키오는 단순하고 소박하지만 이미 일상적인 언어로 자신의 세계관을 피력하고 있었다. 거기에 거부할 수 없는 진실이 인간의 영혼에 산소를 공급한다.
오래 전 잊혀진 메노키오를 추적하고 나선 사학자 진즈부르그의 눈도 내 눈을 밝게 해준다. 왜 그토록 학식 있는 당대의 성직자들이 재판을 그토록 오래 끌면서 경청했겠는가? 인간의 역사에 있어 진실은 개인의 발언이 기존의 가치관과 상치될 때 오는 전체적인 불편함과 억압을 뚫고 밝혀져 왔다.
‘치즈와 구더기’는 역사서라기보다 너무나도 재미있는 한 권의 문학 서적이다. 16세기 한 방앗간 주인의 진솔한 세계관의 발굴은 21세기 서울의 어느 골목에도 거부할 수 없는 소박한 진실이 존재하고 있을 것이란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치즈와 구더기’는 나를 현대 엘리트 사회의 문헌문화에 대한 생활인들의 공격적이고 독창적인 일침을 찾아 나서고 싶게 만든다.
김춘미(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연구소장) spring@knu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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