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쿠닝의 작품이 국내에 선보인다. 9월12일까지 서울 종로구 가회동 갤러리서미에서 열리는 ‘윌리엄 드쿠닝’전. 1980년대 이후 작품을 중심으로 20여점이 전시된다. 국내에서 그룹전 방식으로 한두점씩 선보인 적은 있으나 그의 작품만 한데 모아 전시하기는 처음이다.
반(半)추상 반(半)구상을 구사하는 드쿠닝은 1950년대 ‘여인’ 연작을 통해 세계 미술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이후 그는 70년대까지 분홍 노랑 파랑 등 특유의 화사한 색감을 바탕으로, 물감을 짓이겨 채색하는 파격적인 기법을 담은 추상화를 제작했다. 이를 놓고 평단에선 ‘폭력적인 추상 액션 페인팅’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70년대까지 격정적인 삶과 미술을 이끌어온 그는 80년대 들어 시적(詩的)이면서 차분한 추상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이번 전시작들이 바로 이 시기의 대표작들이다.
전시의 대표작인 ‘무제’ 연작을 보면 그저 몇 개의 선이 쓱쓱 지나간 것 같지만 거기 삶에 대한 드쿠닝의 관조가 담겨 있다. 물결 모양의 붓자국은 유연하고, 색감은 투명하다. 전체적으로 막혀 있지 않고 탁 트여 있어 시원스러운 느낌을 준다. 이에 대해 갤러리서미 측은 “드쿠닝이 그 전까지 모델로 삼았던 피카소의 공격성에서 벗어나 마티스의 우아한 감각주의로 선회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전시에는 드쿠닝의 격정적인 추상화 대표작인 1967년작 ‘물 속의 여인’도 선보인다. 관람객들은 격정적인 추상에서 관조적인 추상으로 변해간 드쿠닝 미술의 흐름을 따라가 볼 수 있다. “제자리에 머무르기 위해 항상 변화한다”던 드쿠닝의 말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전시작들은 전체적으로 추상화지만 부드러움과 편안한 분위기 덕분에 큰 부담없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02-3675-8232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