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왕실의 공식적인 집무 및 생활 공간을 정궁(正宮) 혹은 법궁(法宮)이라 한다. 반면 왕이 부득이한 사정 때문에 임시로 혹은 그리 길지 않은 기간동안 기거하면서 집무를 보는, 일종의 보조 궁궐을 이궁(離宮)이라 한다.
맨 처음 조선의 법궁으로 세워진 것은 경복궁이다. 그래서 흔히들 경복궁에서 왕들이 가장 오래 생활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조선의 왕들이 가장 오래 생활했던 법궁은 창덕궁이다. 경복궁은 약 230년, 창덕궁은 약 270년 왕이 머물렀다.
경복궁은 조선 건국 4년째인 1395년 세워져 1592년 임진왜란으로 불타 없어짐으로써 법궁의 기능을 상실했다. 이후 흥선대원군에 의해 1868년 중건돼 고종이 생활하면서 다시 법궁의 면모를 되찾았다. 그러나 1896년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기는 아관파천(俄館播遷)이 발생하면서 법궁의 역할을 마감했다.
창덕궁은 태종 때인 1405년 이궁으로 창건됐다.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으나 1611년 광해군이 창덕궁을 중건해 이곳에 자리잡았다. 창덕궁은 경복궁이 중건되는 1868년까지 조선 법궁의 역할을 대신한 것이다. 이후 마지막 황제 순종이 1907년부터 국권을 침탈당하는 1910년까지 법궁으로 사용했다. 창경궁은 성종 때인 1482년 세워졌다. 그러나 창경궁은 왕이 생활하면서 정사를 처리하는 왕궁으로 쓰이지는 않았다. 창경궁은 바로 옆 창덕궁의 공간이 부족해 창덕궁에서 생활할 수 없었던 왕의 어머니나 왕의 할머니들의 거처로 사용됐다.
경희궁은 1620년 광해군이 세웠다. 당시의 원래 이름은 경덕궁(慶德宮)이었다. 1624년 이괄의 난으로 창덕궁과 창경궁이 크게 불 타자 인조가 경덕궁에서 9년간 지낸 적이 있다. 1760년 영조는 자신의 이버지 시호인 ‘경덕(敬德)’과 발음이 같다는 이유로 궁궐의 이름을 경희궁으로 바꾸었다.
덕수궁은 임진왜란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임진왜란 발발 이듬해인 1593년, 피란갔다 서울로 돌아온 선조는 월산대군(세조의 큰손자)이 살던 정릉동(지금의 서울 정동) 집을 행궁(行宮·왕의 임시 숙소)으로 사용했다. 광해군은 이 행궁을 경운궁(慶運宮)이라 이름 붙이고 몇 년을 이곳에서 살기도 했다. 고종은 경운궁을 수리해 궁궐의 모습을 갖추게 한 뒤 아관파천 이듬해인 1897년 경운궁으로 옮겼다. 순종은 1907년 즉위해 창덕궁으로 옮기면서 이곳에 남게된 고종의 장수를 기원하는 뜻으로 덕수(德壽)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후 경운궁은 덕수궁으로 불리게 됐다.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