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판이 너무 멀잖아. (스태프를 가리키며) 이것 좀 같이 옮깁시다. 강의 탁자가 너무 높은 거 아닌가? 카메라에 잘 잡힙니까?”
녹화에 들어가기 전 그는 방청객들에게 대뜸 “나하고 얘기를 좀 합시다”라며 통상 FD(무대감독)들이 하게 마련인 ‘바람잡이’ 역할을 자청했다.
“이 강의는 유(儒)·불(佛)·도(道)를 마무리 짓는 아주 역사적인 강의에요. 이 세가지를 모두 강의할 수 있는 사람은 전 세계에 나밖에 없을껴. 여러분이 감동을 받아야만 시청자들이 감동을 받는거여. 그러니까 웬만한 얘기에는 박수도 열심히 치고 많이 웃으라고. 카메라! 방청객들 반응도 미리 많이 녹화해놓으세요.”
‘사설’이 길어졌다. 그는 2001년 5월 KBS ‘논어이야기’ 강의를 돌연 중단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그는 강의 중간에 KBS와 불편했던 관계를 내비치는 말도 했다.
“KBS는 관청이라 방청 한 번 하려면 무슨 절차가 그리 복잡한지. 무대 장치도 아주 복잡했는데 여기는 심플(단순)하고 아주 좋네.”
30분 가까이 그의 ‘방청객 교육’이 계속됐다. 이제 녹화를 시작해야 할 차례. 그가 무대 뒤에서 걸어나오는 것이 첫 장면이다.
“어떻게 들어오면 되는겨? 하도 오랜만에 하니까 다 까먹어서 원…”
그가 다시 등장하고 강의가 시작됐다. 그가 올해 초 달라이라마를 만난 얘기를 꺼냈다.
“만나는 순간, 찌리릭∼했어요. 서로 통한 거지. 달라이라마가 날 보더니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내게 이틀이나 시간을 내줬어. 아주 이례적이에요. 우리는 인류의 모든 문제에 대해 밤새도록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는 인도 사람들의 세계관을 관통하는 업보와 윤회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얼마전 내게 한 젊은 여자가 찾아와서 상담을 합디다. 한 스님에게 결혼할 남자의 사주를 봤는데 같이 살면 죽는다는 거여. 그게 무슨 스님이야. 개새끼지. 불교는 어떤 경우에도 결정론적 운명론을 주장하지 않아요.”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로 내지르는 특유의 독설에 방청객들이 한바탕 웃었다.
“업(業)은 인도말로 ‘카르마(Karma)’에요. 이는 영어 동사 ‘하다(Do)’와 같은 뜻이지. 업보란 무엇이냐. 인간의 모든 행위(業)에는 결과(報)가 따른다는 것이에요.”
그는 인도문명의 세 기둥인 업 윤회 해탈에 대한 설명 등을 곁들여 1시간 남짓 강의를 계속했다. 강의 말미에는 혼돈과 분열에 시대에 모든 도덕적 가치를 재정립하는 거시적 담론을 국민 메시지 형식으로 낭독하면서 강의를 끝맺었다.
김수경기자 sk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