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의 땅끝. 거기서 바다는 세상의 전부인듯 하다. 누구도 눈앞의 바다를 외면하고 등뒤의 땅을 보지 않는다. 발 디딜 수 없는 바다. 답답함이 앞선다. 바다와 땅, 그 경계선 땅 끝. 거기에 서본 사람들, 모두 같은 느낌 아닐지. 그래서 일까. 사람들은 땅끝에서 배를 탄다. 섬 저편, 보길도로 간다. 발떼고 디딘 바다. 숨통이 틔는 듯 답답함도 사라진다.》
섬을 폐쇄라 생각하는 사람. 희망이 없다. 바다를 장벽이라 보는 사람. 발전이 없다. 바다에 갇힌 섬. 그렇다면 그 밖은 무한히 열린 공간. 거기를 보고 사는 사람. 희망과 발전이 있다. 근방 청해진의 장보고 처럼.
땅끝선착장을 떠난 페리. 전복양식장앞 넙도 지나 노화도 뒤편 숨듯 자리잡은 보길도다. . 절망한 채 이 섬에 들어와 칩거한 고산 윤선도(1587∼1671년). 섬은 은둔자 고산이 그 파란만장한 생애를 마감한 고향땅아니던가. 그 역시 답답한 심정을 달랠 곳, 이 바다 이 섬뿐이었나 보다. 직접 꾸몄다는 부용동정원 세연정, 차마시고 책읽던 동천석실의 작은 암자, 거처인 낙석재. 물 돌 소나무 대나무 달을 벗삼아 오우가(五友歌)를 짓고 사철 바다를 무대로 어부사시사를 읊던 선비 고산의 고아한 체취가 흠뻑 배인 이 곳. 언제와도 편안하다.
섬나와 다시 밟은 땅끝. 차를 몰아 두륜산의 대흥사로 갔다. 예가 땅끝이라면 이 산 역시 반도의 허다한 산 가운데 끄트머리일터. 동편으로 강진만, 서편으로 해남만을 거느린 두륜산 깊숙이에 대가람 대흥사는 있었다. 절찾아 걷는 길. 장춘교 지나 법계와 세속을 넘나드는 피안교까지는 녹음짙은 숲터널이 2㎞나 이어진다. 일주문 통과하면 부도전, 운학교 건너 사천왕문을 지나면 경내. 다실앞 연못은 샛노란 개연이, ‘한국의 다성’ 초의선사 동상앞에서는 빨간 백일홍이 예쁘게 피어있다.
내친 걸음은 일지암(一枝庵)을 향한다. 가파른 숲길 오르기를 40분. 시서화(詩書畵) 삼절(三絶)로 한국차를 중흥시킨 초의선사(1786∼1866년)가 만년을 보낸 초옥이 보인다. 산중턱 전망좋은 곳에 한평쯤 될만방 단칸의 이 암자. 연못 사이에 두고 고풍스런 목조가옥 자우홍련사와 나란히 산아래 가람을 향해 앉았다.
홍련사의 연못위 누각형 대청에 차려진 나무찻상. 암주 여연스님 것이리라. 아니나 다를까. 책나르던 스님, 기웃거리는 객손 보더니 일지암의 명수(名水) 유천(乳泉)에서 받은 석간수로 차를 달여 대접한다. 어느 수녀님이 주고 가셨다는 연꽃잎차. 그 향기, 넉넉한 절인심만큼이나 향기롭다. 이게 바로 ‘끽다거(喫茶去·차나 한 잔 마시고 가게)’일세!.
▽함께 떠나요〓유선관에 투숙하는 1박3일 패키지(출발 9월 2, 6일). 땅끝일출∼보길도∼대흥사(일지암)∼다산초당∼보성차밭∼율포(해수녹차탕). 12만5000원(1박5식·합숙). 땅끝과 대흥사, 보길도만 둘러보는 무박2일 패키지는 매주 토요일 출발. 6만9000원. 승우여행사(www.swtour.co.kr) 02-720-8311
해남 보길도〓조성하기자 summer@donga.com
■식후경
겨울잠을 잔다해서 이름붙여진 잠둥어. 서리내리면 동면에 들어갔다가 벚꽃피면 깨난단다. 망둥어를 닮았지만 품격은 하늘과 땅차이. 망둥어는 물밖에 나오면 금방 죽지만 잠둥어는 오히려 햇볕쬐러 나온단다. 개펄에서는 토끼처럼 뛰고 새처럼 날고 뱀처럼 긴다. 가슴팍의 지느러미 덕이다. 그래서 개펄의 날쌘돌이 잠둥어를 잡기란 ‘하늘에 별 달기’다.
“바늘 네 개를 붙인 갈고리낚시로 허리까지 빠지는 개펄에서 ‘사냥’하듯 잡지요.” 강진에서 잠둥어잡이로는 챔피언격인 동해회관 주인 이순님씨(53)의 말. “보통은 짱둥어라고 불러요. 워낙에 맛이 좋고 몸에 ‘짱’이라고 해서 그렇게들 부르나 봐요.”
이씨의 잠둥어 예찬은 예서 그치지 않는다. 플랑크톤을 먹고 사는 잠둥어는 조금만 오염돼도 살지 못해 해양오염측정의 표본이며 태양을 쬐야 살기 때문에 양식도 안되고 비린내도 안난다고. 쇠고기보다 단백질 함유량이 더 많은 고단백으로 맛도 담백해 물리지 않는단다.
“산놈을 꼬챙이에 꽂아 그 자리에서 구워 먹는게 제일로 맛있지. 콩나물 고사리 넣고 전골이나 탕으로 푹 끓여서 먹어도 좋고. 탕 세 그릇만 먹으면 변비는 끝이야.”잠둥어잡이 39년, 식당경력 9년의 이씨. 동해식당에서 내는 잠둥어는 강진만 송산앞바다 개펄(9마지기)에서 잠둥어잡이 기술을 전수받은 아들 박용범씨(28)와 함께 매일 썰물 때 직접 잡아온 것이라고.
구이(사진)는 한접시(10마리) 1만5000원, 전골(4인분·20마리)은 3만4000원. 연중무휴(오전 6시∼오후 9시). 강진읍 프린스모텔 옆. 061-433-1180강진〓조성하기자 summer@donga.com
■이색숙소 : 대흥사 입구 '유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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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는 사람마다 기웃거린다. 그도 그럴 것이. 일주문 밖이니 절은 아닌데 한옥 담장의 풍모로 보아 예삿집은 아닌 탓. 대흥사의 부속건물쯤으로 여기는 듯 했다. 그러면서 삼키는 혼잣말. ‘이런 데서 하룻밤 묵어 봤으면….’
대흥사 숲터널 끄트머리, 피안교 오른편의 멋진 한옥. 대문 현판에 이렇게 씌어 있다. ‘遊仙館(유선관)’. 놀라지 마시라. 이 곳은 여관이다. 대한민국에 단 하나 뿐인 산중사찰 담장 아래 자리잡은 산중의 전통한옥 여관이다.
매일 새벽 3시. 만물을 깨우는 사찰 도량석과 새벽예불 시작을 고하는 사물의 울림이 고스란히 들리는 이 집. 분위기는 사찰의 요사채(손님방), 구조는 고래등같은 대가집, 시설은현대식 전통한옥이다. 마당에는 꽃나무 정원, 뒤뜰에는 장독대. 대흥사 법당앞 흘러내린 계류는 담장을 싸고 돌고 일주문 오르는 길은 대문앞을 지난다.
방에 앉아 장짓문 열자 빗질 고운 앞마당, 녹음짙은 뒤꼍풍광이 쏘옥 들어온다. 400년전 터잡이한 고옥의 프리미엄은 이러했다. 예서 받은 정갈한 아침상.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감상하며 푸짐한 남도상차림을 여유있게 즐긴다. 아침이나 저녁, 정갈한 한정식 상차림으로 손님을 접대했던 전통의 한국여관. 모두 사라진줄 알았건만 땅끝 해남의 고찰 대흥사 앞 그윽한 숲속의 전통한옥에는 이렇게 멀쩡히 남아 있었다. 땅끝과 더불어 해남의 명소가 되고도 남음이 있음이라.
▽예약정보〓객실(총 14개)은 크기에 따라 3만(2인), 6만(4인), 12만원(6인). 화장실 샤워실은 공동사용. 식사는 △저녁상 1만, 1만5000원 △아침상 5000원. 직접 담궈 5년간 숙성시킨 복분자술(2만원)도 별미. 주차장은 길건너. 주말예약은 필수. 서둘러야 잠잘 기회를 잡는다. 주인 윤재영씨. 061-534-3692
해남〓조성하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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