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줄기세포를 설명하는 말들이다. 과연 줄기세포는 인류의 오랜 염원인 무병장수(無病長壽)를 실현하는 돌파구가 될까. 아니면 허황된 장밋빛 기대에 그치는 것일까.
이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캐나다 테리팍스연구소의 커니 이브스 소장과 미국 미네소타대 줄기세포연구센터 캐서린 버페이 교수를 가톨릭대 의대 세포유전자치료연구소 오일환(吳一煥) 교수가 2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몰 학회장에서 만나 줄기세포 연구의 현황과 전망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좌담을 가졌다. 두 해외 석학은 24일부터 5일간 코엑스몰에서 열린 ‘국제혈액학회(ISH) 2002’에서 각각 성체줄기세포에 대한 최근의 연구결과를 발표하기 위해 방한했다.》
▽오 교수〓최근 줄기세포에 관련된 획기적인 연구결과가 언론매체를 통해 잇따라 보도되는 등 줄기세포 연구분야가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이고 있다. 30여년간 테리팍스 연구소에서 줄기세포만 연구해온 이브스 소장의 느낌은 각별할 것 같다.
▽이브스 소장〓연구를 시작했을 때에는 줄기세포의 특성을 이해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걸렸고 이 특성을 제대로 활용하기까지 다시 긴 세월이 필요했다. 과거에는 뇌 심장 근육처럼, 한번 자라고 나면 성장을 멈춘다고 믿었던 신체 기관이나 조직에는 줄기세포가 없는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요즘 연구는 그런 기관이나 조직에도 줄기세포가 있고 이를 이용하면 새롭게 재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학창 시절 상상조차하지 못했던 일이 눈앞에 벌어지고 있다.
▽오 교수〓버페이 교수는 윤리 논쟁을 피할 수 있는 성체줄기세포의 일종인 ‘MAPC’가 배아줄기세포처럼 우리가 원하는 모든 세포로 분화가 가능하다는 연구결과를 학술지 ‘네이처’에 최근 발표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영국 BBC방송은 당신의 연구결과를 집중 조명하는 프로그램을 방영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기도 했다.
▽버페이 교수〓나도 학창 시절에 태아의 뇌처럼 신체발달의 초기 단계에 있는 장기에만 줄기세포가 있다고 배웠다. 지금은 성인의 몸 속에도 줄기세포가 있고 갖가지 세포로 분화시키면 필요한 신체 기관이나 조직으로 키울 수 있다는 사실이 속속 입증되고 있다.
▽오 교수〓이 같은 줄기세포의 새로운 기능은 미래 의학의 청사진을 보여주고 있지만 모든 난치병이 하루아침에 치료될 수 있으리란 기대감과 흥분이 지나친 대목도 있다.
▽이브스 소장〓골수 속에서 조혈모세포라는 줄기세포를 처음 발견한 것이 1960년대였다. 실제로 임상에서 효과적으로 골수이식이 적용된 것은 80년대 후반이었다. 지금 줄기세포 연구는 초기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 이 연구결과를 임상에 적용하려면 앞으로 10년 이상 걸릴 것이다.
▽버페이 교수〓유전자 치료법이 처음 알려졌을 때에도 세상은 모든 질병을 고칠 수 있다고 흥분했으나 현재 실제로 고칠 수 있는 병은 많지 않다. 줄기세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줄기세포를 이용해 신체 조직을 재생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으나 치료에 이용되려면 시험관 실험과 동물실험,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실험 등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복잡한 절차가 남아 있다.
▽오 교수〓최근 한국 정부도 줄기세포 연구는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될 과제로 인식하고 야심찬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1년에 120억원씩, 10년간 1000억원 이상이 투자되는 국책연구 프로젝트인 세포응용연구사업단이 최근 본격적 활동에 들어갔다. 줄기세포 연구의 선진국으로 불리는 미국과 캐나다의 상황은 어떤가.
▽이브스 소장〓테리팍스연구소에서는 30년 전부터 줄기세포 연구에 관심을 가져왔다. 캐나다 정부도 ‘줄기세포 네트워크’를 결성해 연구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버페이 교수〓대학과 연구소별로 줄기세포 연구를 많이 진행하고 있다. 미네소타대 줄기세포연구센터에는 50여명의 연구인력이 있으며 연간 1000만달러(약 120억원)의 연구비를 지원받고 있다.
▽오 교수〓그동안 많은 사람이 성체줄기세포는 배아줄기세포와 달리 생명윤리 논란의 대상은 안 되지만 분화능력이 떨어진다고 여겼다. 대신 배아줄기세포는 자유자재로 분화할 수 있지만 수정란을 파괴해야만 얻을 수 있어 생명윤리 논란의 대상이 돼왔다. 버페이 교수는 최근 ‘MAPC’(줄기세포의 일종)라는 성체줄기세포가 배아줄기세포의 장점을 고루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 많은 과학자의 찬사를 받았다. 병에 걸렸을 때 자신의 몸 속에 들어있는 성체줄기세포를 이용하면 병을 고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것 아닌가.
▽버페이 교수〓자가이식을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위급한 환자의 몸 속에서 세포를 추출한 뒤 충분한 양으로 키우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현재의 방법으로는 적기에 치료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또 환자가 중병을 앓고 있을 때 몸 속에서 뽑아낸 줄기세포가 과연 제 기능을 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오 교수〓국내외를 막론하고 줄기세포 이식을 원하는 난치병 환자가 많다. 문제는 줄기세포 이식술을 마치 ‘요리책’이라고 생각하는 태도다. 줄기세포라는 ‘재료’를 적당히 버무리면 원하는 ‘음식’을 마음대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버페이 교수〓많은 사람이 세포치료에만 관심을 갖는데 줄기세포 연구의 미래를 전망할 때 더 큰 효용은 따로 있다. 줄기세포가 가진 특성을 알면 새로운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다. 이는 세포를 이용한 치료보다도 더 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줄 수 있다.
▽이브스 소장〓그러나 쉽게 단정하기는 어렵다. 퀴리부인이 방사성 동위 원소를 처음 발견했을 때 누구도 그 사용법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현재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할 때 방사성 동위 원소는 필수요소가 됐다. 새로운 발견이 현실에 응용되려면 긴 시간이 필요하다.
▽버페이 교수〓예상보다 빠를 수 있다. 정보과학의 발달로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은 크게 달라졌다. 같은 시간 안에 처리할 수 있는 정보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무작정 오래 걸린다고 말할 수 없다.
▽오 교수〓외국처럼 한국에서도 줄기세포와 관련된 윤리논쟁이 있고 사회적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특히 배아줄기세포를 얻는 과정에서 복제인간이 탄생할 수 있다는 걱정도 만만치 않다. 일부에서는 줄기세포를 이용하면 불로장생(不老長生)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
▽버페이 교수〓인간 복제에는 반대하지만 세포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 배아줄기세포를 연구하는 것은 필요하다.
▽이브스 소장〓‘불로장생’에도 한계가 있다. 몸과 마음은 80대인데 심장만 20대로 만든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신체의 모든 기능이 떨어진 상태에서 수명을 연장하는 것은 비윤리적이다.
▽오 교수〓줄기세포에 대한 희망과 흥분이 전혀 불필요하다는 말은 아니나 보다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해졌다. 또 분명한 사실은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연구분야란 점이다. 최근 과학적 성과는 이를 증명하고 있다. 당장에는 쓸모없는 것처럼 보이는 기초 연구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사회가 기초 연구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지원하면서 인내심을 갖고 기다릴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정리〓차지완기자 maruduk@donga.com
▼좌담자 약력▼
커니 이브스(59)
-현 캐나다 테리팍스연구소 소장
-캐나다 퀸스대 졸업
-영국 맨체스터대 이학박사
-캐나다 국책연구과제
‘줄기세포 네트워크’ 책임자
캐서린 버페이(45)
-현 미국 미네소타대
줄기세포연구센터 소장
-벨기에 루뱅대 졸업
-미국 암센터 회원
-미국 미네소타대 의대 교수
오일환(吳一煥·41)
-현 가톨릭대
세포유전자치료연구소 소장
-가톨릭대 의대 졸업
-미국 템플대 의대 분자생물학
이학박사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암센터 연구원
-캐나다 테리팍스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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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기세포〓신체를 구성하는 모든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세포. 한 개의 세포가 몇 번이고 반복해서 여러 개의 세포로 불어나는 ‘자가 재생산’ 능력과 여러 기관이나 조직으로 분화할 수 있는 ‘다분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크게 배아줄기세포와 성체줄기세포로 구분된다.
▽배아줄기세포〓배아는 정자와 난자가 만나 결합된 수정란을 가리키는 말. 배아줄기세포는 이 같은 수정란이나 유산된 태아 조직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생명의 초기단계 세포를 말한다. 자가 재생산 능력이 우수하고 대량 증식이 가능하지만 이식 뒤 암이 생길 위험이 높다는 단점이 있다.
▽성체줄기세포〓배아줄기세포와 달리 성숙 단계의 신체에 존재하는 줄기세포. 수정란을 파괴하지 않고도 얻을 수 있어 생명윤리 문제를 피할 수 있고 이식 뒤에도 암이 생길 위험이 없다는 장점이 있다. 그동안 자가 재생산 및 다분화 능력이 배아줄기세포에 비해 떨어지는 것이 단점으로 지적돼 왔으나 최근 이를 뒤엎는 연구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