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학은 나의 자살미수’라는 말을 쓴 적이 있는데, 결국 자살미수라는 것은 우리가 타고난 개인적 업보를 끊고 싶고 저항하고 싶다는 또 다른 고백이 아니었을까요. 자살미수- 그것이 내 문학의 의지였고 그것은 모든 업보를 넘어 새롭게 태어나고 싶다는 부활미수의 의지였을 것입니다….”
김승희(50) 서강대 영문과 교수는 17년전 자전적 에세이 ‘33세의 팡세’ 서문에 이렇게 적었다.
월간 ‘문학사상’에 1년반 동안 연재된 것을 묶어 1985년에 발표한 이 책은 발표되자 마자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한 문인의 솔직한 자기 고백은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남아선호사상에 대한 설움, 모진 가정 풍파에 두 번의 자살시도 등 과거의 기억들을 가감 없이 글로 옮기면서 ‘제2의 전혜린’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이 책은 지금까지 50만부가 넘게 팔렸다. 문학사상사 측은 “과거 ‘33세…’를 읽었던 독자들의 요청으로 개정판을 낸 것”이라며 “‘젊은 날의 기록을 그대로 두고 싶다’는 저자의 의견을 받아들여 편집만 현대적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그는 시인이 되고 싶었고, 시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그에게 시인은 숙명이었고 업보였다. 그러나 그는 죽음을 꿈꿨다. 화재가 난 성냥공장에 뛰어들고 싶은 욕구를 느끼는 등 스스로의 삶을 탕진하길 바랐고, 자신 이름으로 예약된 묘지를 찾기도 한다.
그는 행복을 ‘슬픈 상투어’로 보았다. 대신 “강렬하게 집중된 삶, 자기 몸에 피를 모두 뽑아 중세 연금술사가 했듯 마술의 불을 지펴 형형색색의 비약(秘藥)이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고 읊조린다.
아버지의 지붕을 뚫고 거인처럼 커진 키로 집안을 박살내 버린 남동생을 바라보며 그는 백수광부의 누이가 부르는 ‘공후인’을 떠올린다. 만약 ‘건너가지 않으면 내가 물속으로 떠밀어 버리겠다’며 증오하면서.
하지만 그에게도 풋풋한 사랑이 있었다. 여고시절 국어 선생에 대한 애정을 느꼈고, 대학 다닐 때 다른 대학의 모 교수를 동경했다. 또 ‘비틀즈’의 음악과 쇼펜하우어의 염세철학에 빠져들기도 한다.
저자는 ‘30대라는 강(江)’을 치열하고 지독하고 아프게 건넜다.
이 책을 읽으며 과연 이 시대의 386세대는 어떤 강을 지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황태훈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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